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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Aug 11. 2023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왜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 물어보면 보통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류의 대답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타적인 마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참 행복했었는데, 그래서인지 학교라는 공간이 참 아늑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행복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대에 지원했다. 

 사범대가 아니고 교대인 이유도 같은 결의 마음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폭력적인 친구들과 선생님들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 남중 남고에서 피 끓는 수컷들은 서열정리가 되기 전까지 싸움이 끊이지 않는데, 이런 짐승 같은 것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 이해하려 해 보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친 폭력적인 선생님들 때문에 학교란 공간이 한층 더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맞고 다녔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어쩔 수 없이 겸양의 미덕을 내려놓고 설명을 하자면, 당시의 나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선생님들에게도 총애를 받았기에 맞고 다닐 일이 없었다. 공부는 1등이었고, 반대항 축구대회와 농구대회에서 주전이었으며, 교내 비공식 팔씨름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고, 본받고 싶은 친구 투표에서도 최다득표해서 특별 장학금도 받았었다. 그러니 나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메말라갔던 것 같다. 선생님이 없는 상황에서 싸움이 터지면 그야말로 UFC가 되는데, 야만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한 격투 장면도 충격이지만 그 싸움을 보며 즐기는 수많은 친구들 틈에서 섞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면 나 자신이 별종으로 느껴졌던 게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느꼈던 평화로운 공기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교대에 진학해서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고 참 행복했다. 행복한 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도 잘 따라줘서 행복이 넘치는 반을 매해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노는 것처럼 즐겁게 일하면서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교직생활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어떤 활동으로 이 단원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할까를 고민했고,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내일은 또 어떤 이벤트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며 퇴근시간을 늦췄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이십 대가 끝나갈 무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내 월급으로는 저축은커녕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움을 느꼈다. 집값은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만큼 높게만 느껴졌고, 내 월급으로는 절대로 집을 장만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경제적 무력감이 나 자신을 짓누르며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으로 교대에 진학했던 당시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래서 교사 직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다른 일을 하며 교사로서 받던 연봉의 두 배 이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굉장한 연봉이었던 것은 아니고, 교사의 월급이 워낙 박봉이기에 일반적인 대기업 수준의 월급이었음에도 차이가 컸다. 

학교를 떠나 새로운 일을 하며 참 많은 것을 느꼈는데,

-교사가 되면 주변 사람들은 죄다 교사들 밖에 없는데,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교사들과 생활할 때는 교사들마다 성격과 스타일이 참 다양하다 생각했는데, 학교 밖에서 들여다보니 교사들은 참 균질한 집단임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참 순수한 사람들이다. 초등학생들과 평생을 함께해서인지 사람들이 하나같이 참 순박하다. 그래서 사기를 참 많이 당한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참 말을 잘 듣는다. 교감 교장이 시키면 군소리 없이 척척 일을 잘한다. 이렇게 말 잘 듣는 부하 직원들을 거느린 교장선생님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사들은 참 성실하다. 군소리 없이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시킨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고민한다. 나는 교사들 중에는 성실함으로 중간도 못하는데, 다른 직종에 와서 보니 나도 꽤나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떠나 다른 일을 할 때도 어렵지 않게 인정을 받아서, 계약 기간이 끝날 때쯤에는 계속해서 함께 하자는 러브콜을 받았다. 사실 이 일이 더 잘 맞으면 전직하리라 생각하며 애초에 뛰어들었었다만 막상 결정의 순간이 닥치니 고민되었다. 또 잠시 겸양의 미덕을 내려놓고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성과가 잘 나와서 사내 홍보팀에서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 일에 재능이 있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변하겠다. 그런데 그 일을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변하기 어려웠다.  

 교사 시절에는 학교 가는 게 즐거웠는데, 출근길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교사 시절에는 학생들과 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갔는데, 다른 일을 하는 동안 하루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졸업식날 아이들과 헤어질 때 그동안의 행복했던 시간이 떠올라서 울었었는데, 지긋지긋한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후련함과 기쁜 마음을 나누며 팀원들과 매번 파티를 했다. 

 그렇다고 너무 불행했단 말은 아니다. 교사 시절처럼 '이렇게 즐겁게 일하고 돈을 벌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 여타 직업인이 가지는 고충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였다. 반면 돈과 명예라는 장점은 확실했다. 교사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주변 사람들의 대우가 좋아서, 서울대에 입학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의 자신과 대학교 때의 자신은 똑같은 사람인데, 서울대학교 학생증을 보여주면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달라져서 우쭐해지면서도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던 그 말을 너무나 공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 교직, 그리고 돈과 명예를 두고 꽤나 오랜 시간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게 나에게 어울리는 행복이라는 결론을 맺고 교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마무리하고 싶으나 요즘 들어서는 교사로서의 삶이 행복하지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학교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ADHD는 너무나 흔해졌고, 사회성이 결여된 아이들도 너무 흔해졌다. 거기에 분노조절이 안 되는 아이와 폭력적인 아이들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온갖 금쪽이들은 온 학교를 휘젓고 다니는데 교사가 제지할 방법은 전무하다. 금쪽이들이 촉법소년, 아동학대법, 교권보호위원회 제도의 허점을 꿰뚫어 보고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적어도 본인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유린한다.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할 학부모들은 오히려 온갖 민원으로 교사들을 짓누르고, 때로는 고소 고발로 포박한다. 교사에게 바라는 사회의 잣대는 높기만 하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돌을 맞는다. 자칫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질러 꼬투리가 잡히는 날에는 십수 년간 쌓아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실추되고 나아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십수 년간 학생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온 나 같은 중견교사도 요즘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서운데, 신규 교사와 저경력 교사들은 얼마나 움츠러들지 안타깝다. 그리고 나처럼 교직을 열렬히 사랑했던 교사도 행복하지 않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행복한 교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몹시 의문스럽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두 질문은 모두 무의미하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동시에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다. 


 좋아하느냐 잘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 직업을 둘러싼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

 어떤 직업이든 그 환경이 우호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안정적이라면 차츰 그 직업에 익숙해지며 잘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직은 최악의 직업이다.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곱지 않고, 교사를 지켜주는 시스템은 전무하다. 그러니 교사의 직업적 매력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올해 입시결과 교대 커트가 5등급까지 곤두박질 칠만큼 인기가 급락한 것에 놀라워하며 뉴스로 보도되기까지 했다만, 내가 봤을 때 이것은 전혀 놀라워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아주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몇 해 거듭되며 교사들의 경쟁력이 무너지면 학교를 향한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교실붕괴는 더 이상 손도 쓸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리라 예견한다.


 나는 한평생 마음을 다해 교직을 사랑했다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교대에 진학하겠다 한다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반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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