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자본주의의 길을 누구보다 열심히 가고 있는 베트남의 그늘.
결국 중요한 건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념이 아닌 것 같다.
이곳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거리의 소녀가 있었다.
천사 같은 미소라는 진부한 표현이 실은 극히 사실적인 표현일 수 있음을 알게 한 소녀.
사실 소녀인지 소년인지도 확실치 않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순간이어서 그 미소를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빛나던 미소가 생생하다.
정말 천사는 아니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평생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았겠는가. 그런데 정말 처음이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느낀 미소는.
어떤 사람이 천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오묘한 생김새라 묘사했는데, 혹시 그 사람도 그 아이를 어디선가 봤던 게 아닐까?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가끔 나타난다던데, 그 사람도 어디선가 천사를 보고 그리 묘사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정말 천사를 본 걸까?
나의 20대와 30대에는 거리의 아이들이 해맑게 자라날 수 있는 우리 지구가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열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삶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를 떼어내어 개도국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사용했더랬다. 그런데 그 당시 많은 주변 사람들이 왜 굳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러느냐. 봉사하고 싶다면 대한민국에도 불우한 이웃이 많지 않냐 했다. 그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라 매번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곤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나에게 맡겨진 작은 소명이 그것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렸던 게 아닐까.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강아지와 함께 거리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의 미소를 본 게 아닐까.
사회적 역할로 바쁜 40대와 50대를 보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줄 조그만 여유가 생긴다면, 나는 또 작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된 오늘. 이 생각은 여행지에 두고 오게 될지 가슴에 남아 남은 삶과 동행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