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알쏭달쏭한 감동을 남겼던 그 영화가 재개봉을 했다. 꼬맹이 시절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상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또다시 35년이 흘러 어쩌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나에게 질문하기 위해 이 감상평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네 인생을 살았니? 네 열정을 따라 살았니?'
카르페 디엠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현재를 즐겨라로 번역되었으나, 영어로는 seize the day, 직역하면 '오늘을 포위하라'이니 만약 enjoy로 받아들인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외친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오늘이 도망가지 못하게 사방에서 포위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포위하고 포획하란 걸까?
닐은 의사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부모님의 자랑이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의사라는 꿈은 닐의 꿈이 아니다.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의 꿈이다. 닐의 열정은 연기에 있다. 교내 연극 오디션에 도전해서 단번에 주연을 맡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관객과 동료배우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재능도 충만하다. 하지만 의사가 되는 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부모님은 아들의 어리석은(?) 꿈을 짓밟는다. 그리고 꿈을 짓밟힌 닐은 스스로 생을 거둔다. 자신의 열정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저항인 것이다. 죽은 삶을 사느니 살아서 죽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트루먼 쇼'에서는 모자람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트루먼의 일상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묻는다. '이게 진짜 행복이라 생각하니? 너라면 타인의 각본이지만 부족함 없는 트루먼으로 살아갈래? 아니면 불편하다 못해 험난하고 처절할지라도 네 의지대로 살아갈래?'
답은 분명하다. 제 아무리 안락한 삶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각본에 의한 삶이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군이다. 그리고 만인의 인정을 받는 직군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안락한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열정이 아니라면, 그것이 부모님이 나에게 써준 각본이라면, 혹은 세상이 정답이라며 강요하는 각본이라면 그 각본대로 사는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다. 제 아무리 안락한 삶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각본에 의한 삶이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누군가는 닐처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느라 본인의 열정대로 살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세상이 말하는 정답 인생을 추구하다 한평생을 허비한다. 아니 부모님, 친구들, 세상사람들이 각자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정작 나의 열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
너 정신 차리고 잘 살았니? 설마 인생 다 살고 '아! 큰일 났다! 남의 인생을 살아버렸다!' 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