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치는 날의 일기

by 바보

여기에 일기를 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

글을 올려도 읽는 사람 몇 명 없는데 뭐 어때?


스트레스와 이런저런 걱정에 짓눌려 힘든 하루를 보냈다.

종일 벌렁대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남들은 나를 평온한 사람인 줄 아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잘 모르는 소리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여러 자극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노출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다만 예민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타인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다 보니 오히려 고요한 호수처럼 타인의 눈에 비췰 뿐이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파도가 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큰 파도가 쳤다.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기에 장기적으로는 더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됨을 어려서부터 수없이 학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로 감정을 (특히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은) 웬만해서는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가끔은 표출되지 않은 스트레스가 제대로 여과되고 처리되지 못한 채 쌓이면서 신체적인 문제를 일으키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두통에 속 울렁거림을 견디며 귀하디 귀한 일요일을 통째로 탕진했다.

하아... 내 아까운 일요일...

다음번 파도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방파제를 하나씩 쌓아보자.


방파제 1.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자. 걱정으로 해결될 게 없지 않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밤새 읊어도 모자랄 게다. 하지만 읊어서 무엇하리.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현재의 나뿐인 것을. 더 긍정적인 미래를 바란다면 걱정하며 얼마 없는 에너지를 방전시킬게 아니라 그 에너지로 현재의 내 마음밭을 가꾸자.


방파제 2.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그거 하나 포기한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게 아니지 않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에 쓸모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태우지 말고 상대적으로 가능성 높은 일에 사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내 삶에 남아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니 선택과 집중은 필수다. 그러니 포기하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지혜로움이다.


방파제 3.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자. 먹고사는 문제는 이미 해결했지 않나. 까짓 거 좀 적게 먹으면 되지 않나. 소식이 건강에 좋다더라. 그러니 더 이상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어디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등의 부담은 쓰레기통에 처넣자. 무엇보다 타인의 성공에 배앓이하지 말고 딱 열정의 재료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처넣자.

그리고 딱히 성취랄 게 없는 삶이라도 괜찮다 되뇌어 보자.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존재함 자체가 목적이며, 성취는 태어난 김에 심심하니 이것저것 시도하다 얻어걸리는 결과물일 뿐이다.


방파제 4. 무기력하고 나태한 나 자신을 보듬어주자. 마냥 딩구르르 방바닥을 구르고 있는 내 마음을 찬찬히 잘 살펴보면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 다만 그 열정보다 놀고 싶은 열정이 더 클 뿐이다. 노는 건 제법 중요하다. '원 없이 놀고 잘 쉬어야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이 쑥쑥 자라나서 달려야 할 때 달릴 수 있으니까!!'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노는 건 재미있다. 행복하다.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인생에서 즐겁게 놀 수 있는 때가 늘 계속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러니 놀 수 있을 때 재미있게 노는 게 뭐가 나쁜가. 반대로 인생의 즐거움 다 놓치며 사는 인생이 진짜로 위험하다. 그러면 마음이 병든다. 병든 마음은 더 이상 아무런 열정의 싹을 틔우지 못한다. 밥도 안 먹고 싶고, 데이트도 안 하고 싶고, 책도 읽기 싫고, 텔레비전도 재미가 없고, 게임도 심드렁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다 귀찮은 삶이라면, 이런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게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소소한 기쁨이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러면 잘 살고 있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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