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에서 옆반 선생님과 밥을 먹다 우연히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어딘가 익숙한 지명, 어딘가 비슷한 풍경, 알고 보니 같은 학교, 같은 과, 두 살 아래 후배였다. 캠퍼스를 함께 누비던 그 시절, 어쩌면 도서관의 같은 열람실, 매점 앞 벤치 하나를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경인교대는 캠퍼스가 크지 않아서 여러 번 마주쳤을게 분명하다. 게다가 내가 집행부로서 기획하고 진행했던 O.T에도 참석했다니, 같이 근무하는 수개월 동안 몰라본 게 이상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공통의 지인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나왔다. 이창배.
동기 중 가장 개성 넘쳤던 친구. 약장수 같으면서도 동시에 교수님 같은 독특한 말투, 노란 머리에 칼주름잡은 면바지와 옥스퍼드 셔츠가 묘하게 어울리는, 괜히 사람을 웃게 만들던 능력이 비상했던 창배.
친구들 모임을 기획하고, 노래방에서는 늘 마이크를 놓지 않던 그 친구.
창배는 파아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새빨간 풍선처럼 존재감이 엄청난 친구였다.
그랬기에 나는 몰라도 내 친구 창배는 기억할 것 같아서 물어봤다.
"우리 학번에 창배라고 있는데, 알아요?"
"창배 오빠요?"
뭔가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고로 떠나셨잖아요. 오래됐는데.. 15년 전쯤? 모르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조각 하나가 뚝, 하고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우리가 그렇게 갑자기 흩어진 게... 그 이유였구나.
스리랑카에서 국제협력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나는 동기들과 연락이 끊겼다. 바쁘기도 했고, 시차도 컸고,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함은 있었지만 ‘다들 바쁘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저 자연스레 멀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중 누군가는 친구를 잃고 울었을 테고, 누군가는 상갓집을 다녀왔겠지. 또 누군가는 슬픔에 말을 아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일부러 소식을 감춘 건 아니었을 테지만, 어쩌다 나는 그 장면에 없었다. 친구를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만큼, 나는 그 친구의 마지막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거의 동네 친구처럼 자주 만나고, 시험 끝나면 무조건 회포를 풀었고, MT 가면 누구보다 큰 웃음을 나눴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실연에는 다 같이 술잔을 기울였고, 기쁜 일에는 모두 모여 손뼉 치며 축하해 줬다.
즐거운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들이기에, 아픔도 함께 나누었어야 했는데. 그 아픔을 곱씹은 건, 결국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창배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니. 그것도 15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창배는 정말 개성 넘치던 친구여서 드문드문 생각났었다.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낼까? 어떤 선생님이 되었을까? 어떤 여자와 결혼했을까? 아이도 창배를 닮아 개성 넘치려나?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창배는 말을 잘해서 장학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워낙 마당발이라 동문회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쩌면 넘치는 끼와 재능으로 인해 학교를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런저런 상상을 수차례 했더랬다. 무려 15년 동안.
어떤 조각은, 먼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맞춰진다.
그 조각이 딱 들어맞는 순간, 잊고 지냈던 슬픔도, 억눌렀던 미안함도 함께 돌아온다.
다시 연락해야겠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우리가 함께 모였던 기억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듯, 그들도 어딘가에서 그 시절을 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