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래는 지금, 우리 교실 안에 있다

국제 바칼로레아(IB)는 우리 교육의 구원자일까?

by 바보

'4차 산업혁명, 예측 불가능한 미래.' 이 단어들은 우리 사회에 깊은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불안의 화살은 어김없이 '교육'의 심장을 향했습니다. 정답만 외우는 낡은 교육으로는 결코 미래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자성은 이제 모두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의 한가운데로, 국제 바칼로레아(IB)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줄 단 하나의 구원자처럼 등판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가장 가까운 곳을 들여다봅시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교실 말입니다. 우리가 겪는 교육의 문제가 정말 ‘철학의 낡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미 시작된 소중한 변화를, 우리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모든 교실의 완벽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 간의 격차, 과밀학급의 한계, 저출산으로 인한 폐교 위기의 학교 등 우리가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제약 속에서도 변화는 분명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학생의 엉뚱한 ‘질문’ 하나에서 위대한 수업이 시작되고, 정답 없는 주제를 앞에 두고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며 토론하고, 우리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직접 영상을 만들고 보고서를 쓰는 교실. 아이들이 수동적인 ‘배움의 대상’에서 능동적인 ‘탐구의 주체’로 거듭나는 놀라운 현장.

이것이 지금 우리가 희망의 근거로 삼아야 할 진짜 변화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싹을 틔워,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이어지는 ‘과정 중심 평가’와 ‘학생 주도성’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IB가 자랑하는 ‘탐구-실행-성찰’의 학습 설계는, 이미 우리 교실에서 자생적으로 움튼 ‘질문-탐구-표현’의 흐름과 그 본질을 공유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문제의 핵심은 우리 교육의 철학이 낡은 것이 아니라, 이미 자라난 변화의 싹이 더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혀 있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어렵게 피어난 창의와 협력의 꽃은, 중학교를 지나 대학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맞춰진 고등학교의 단단한 땅 위에서 점차 시들어갑니다. 이는 단순한 수업 방식의 후퇴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철학이 허리 잘리는 비극적인 단절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결코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역시 누구보다 변화를 갈망하며, 주어진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시라는 거대한 구조적 벽은, 교사의 선의와 열정을 옥죄는 거대한 현실입니다. 촘촘한 시간표와 정량화된 평가, 학생의 깊은 성장 과정을 몇 줄의 ‘특기사항’으로 압축해야만 하는 시스템 속에서 창의적 수업을 향한 도전은 번번이 좌절됩니다. 교사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가 그들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법은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지난 20년간 교실 속에서 어렵게 쌓아 올린 ‘한국형 미래 교육’의 소중한 자산을, 더는 초등학교 교문에만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외국의 정답을 서둘러 들여오기 전에, 우리 안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혁신의 불꽃을 중·고등학교까지 활짝 피워낼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입 평가의 자율성은 대학에 점진적으로 이양하고, 국가는 그 과정의 공정성과 신뢰를 철저히 감독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지혜를 모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IB는 그 자체로 훌륭한 프로그램입니다. 해외 진학을 꿈꾸거나, 특별한 학습 경로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또 다른 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공교육의 울타리 안에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IB를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은 얼마든지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교육 전체가 나아갈 단 하나의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육은 결코 하나의 모델로 모든 아이들을 담아낼 수 있는 단순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교육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는, 단지 입시 제도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직된 직업 구조와 승자독식의 경쟁 시스템, 바로 거기에 진짜 원인이 있습니다.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으로, 좋은 직장이 곧 삶의 질과 행복으로 직결되는 단선적인 구조 속에서, 수능은 ‘원인’이라기보다 고통스러운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입시 개혁은, 다양한 삶의 방식과 직업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대타협과 함께 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수입 교과서도, 화려한 외국 시스템의 복제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교실에서 질문을 던지고, 또 누군가는 그 질문에 귀 기울이며 함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된 그 변화를, 더 멀리, 더 깊게 이어주는 일.


진짜 미래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교실 안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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