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쓸모없는 공부에 대하여

by 바보

평소 수학 문제라면 의기양양하게 풀어내던 아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습니다. 무슨 어려운 문제라도 있나 싶어 다가가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더니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학은 누가 만든 거예요? 어른 되면 쓰긴 써요? 우리 엄마가 미분 적분을 배워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그랬어요"


순간, 사각거리던 연필 소리가 일제히 멎었습니다. 교실의 모든 눈동자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아이의 꾸밈없는 질문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라는 상투적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질문의 무게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미분 적분을 써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어렵게 공부한 걸 단 한 번도 써먹은 적이 없다니. 새삼 허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을 숙제처럼 떠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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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질문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배움의 쓸모'라는 굳은 생각에 균열을 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배움을 '써먹을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만 재단하게 되었을까요. 마치 모든 지식이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연장통 속 공구여야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의 말처럼, 어른이 된 우리 중 대부분은 인수분해를 이용해 장을 보거나 삼각함수로 출근길의 거리를 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밤, 교과서의 빽빽한 글자들과 씨름하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썼던 그 시간들은 다 부질없는 몸부림이었을까요?


그 허탈감 속에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저는 우리가 '쓸모'라는 단어를 너무 좁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배움의 가치는 '쓸모'라는 단편적인 기준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배움은 '사고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헬스장에서 역기를 드는 것이 당장 길거리에서 무거운 것을 들기 위함만이 아니듯, 복잡한 수학 문제는 뇌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과 같습니다. 정답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의지, 여러 개념을 연결해 논리를 세우는 과정, 막혔을 때 다른 길을 찾아내는 유연성. 이 모든 것이 미분 적분 문제 하나를 푸는 과정에 녹아있습니다. 그렇게 단련된 '생각의 힘'은 수학 시험지가 아닌, 인생의 복잡한 문제 앞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고 지탱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됩니다.


둘째로, 배움은 세상을 보는 '삶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역사나 문학, 예술 같은 소위 '쓸모없는' 과목들을 떠올려 봅니다. 신라 시대의 왕 이름을 외우는 것이 당장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 지식 한 조각은 경주 여행을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만듭니다. 스쳐 지나갈 돌멩이 하나에서 천 년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소설 속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이 쓸모없어 보이는 지식들이 우리 삶의 배경을 얼마나 풍요롭게 채색하는지요. 그것은 삶의 모든 순간을 더욱 깊이 느끼고 음미하게 만드는, 그래서 돈으로 환산할 수도 쓸모의 잣대로 재단할 수도 없습니다.


며칠 후, 저는 그 아이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거창한 이야기 대신 솔직한 제 마음을 이야기해 주기로 했습니다.


"네 말이 맞아. 선생님도 미분 적분을 써본 적은 없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은 그때 그걸 공부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아. 그리고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며칠이고 끙끙대다가, 어느 순간 '아!' 하고 길이 보였을 때의 기쁨도. 어쩌면 수학은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힘든 과정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나 봐."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대학 때 쓸데없이 글씨 예쁘게 쓰는 법을 배웠대. 다들 그걸 왜 배우냐고 했지만, 그게 나중에 예쁜 글씨체로 사랑받았던 맥킨토시란 이름의 컴퓨터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됐대. 지금 우리가 배우는 것 중에 어떤 게 나중에 너의 멋진 생각과 번개처럼 연결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러니 쓸모없어 보여도 부지런히 주워 담아두는 거지. 네 마음과 머릿속 주머니에."


물론 제 대답이 아이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교사란 아이들의 머리에 '쓸모 있는 지식'을 쌓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생각의 씨앗이라도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정성껏 일구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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