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만난 부시맨

by 바보

스리랑카에 가게 된 것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군 대체복무제도를 통해서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인 KOICA에서 파견하는 국제협력요원이 되어 2년여간 봉사활동을 함으로 군역을 대신하는 제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사라진 제도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스리랑카에 파견되기 전에는 그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파견될 나라가 스리랑카라는 것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세계지도를 찾아봤을 때, 인도의 남쪽 바다에 떠있는 눈물 모양의 섬나라가 스리랑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나라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고, 다만 아주 낙후된 나라라는 이미지만 있었기에 콜라병을 든 부시맨을 슬쩍 떠올리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전혀 몰랐었다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아, 부시맨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 적은 있다. 가장 늦게까지 과거의 삶을 유지하던 부족의 공간이 그대로 관광 스팟이 된 마을을 찾았을 때였다. 부족민들은 전통춤을 보여주기도 했고, 음식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부족민들의 박력 넘치는 구호를 따라 하고, 남성미 넘치는 춤 동작들을 배우고, 신석기시대에나 사용했을법한 도구를 사용해 요리를 하며 시간여행을 온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누군가 자전거를 발견하기 전까지.


일행 중 한 명이 건너편 숲에 들어갔다가 자전거를 발견하고, 이어서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게 틀림없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어린이 한 무리를 발견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당연히 삽시간에 퍼졌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깊은 숲 속에서 아이들만 무리 지어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장면과 간석기로 음식을 만들던 부족민의 모습은 한 장면에 담기에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이때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엄마로 추측되는 부족민에게 주춤주춤 다가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다 한차례 혼나고 다시 숲 속 저편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그 순간,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그 순간, 속았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현지인 가이드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민속촌 연기자들처럼 이들도 연기자라 생각하면 이들이 선사한 경험은 오히려 놀랍도록 날것 아닌가. 게다가 언젠가 받아들인 문명의 이기가 관광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 건너편 숲으로 옮겨 놓았으니 나름의 배려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아이들은 돈벌이에 이용하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성숙한 부모의 모습인가.



이 날로부터 딱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른들이 일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을 텐데, 부모의 대를 이어 여전히 부족 생활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아니면 숲을 나와 대도시에 정착했으려나? 에어팟을 귀에 꼽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현대인의 전형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10년이라는 시간은 강산도 바뀌는 시간이고, 부족민이 현대인으로 탈바꿈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2009년의 스리랑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찬란했던 스리랑카, 그 기록을 오늘 시작한다. 찬란했던 그 날들을 도저히 제대로 기록할 자신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억이 바래지고 희미해져서 좀 더 진작에 기록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았다. 그런데 이대로 더 지체하다가는 정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잊히는 것이 두려움일 만큼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그간 쌓인 먼지들은 닦아내고 정성을 들여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