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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Nov 10. 2019

홍차 순례길

버스비를 받는 버스안내군(?)

홍차 애호가들의 성지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로 향하는 순례길은 험난하다. 수도 콜롬보에서 묻고 또 물어서 터미널을 찾았다면 당신은 같은 노선에 두 종류의 버스 정류장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는 A/C라는 팻말이 있고 다른 하나는 없을 텐데, 무조건 A/C를 타라. A/C는 에어컨을 뜻하는데 이 팻말이 없는 버스는 무척 덥다. 아니 미칠 듯이 덥다. 그리고 달리는 내도록 매연과 먼지를 마셔야 한다. 에어컨 버스를 타는 곳을 잘 찾아가면 또 두대의 버스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는 사람이 많고, 다른 하나는 빈자리가 많을 것이다. 스리랑카 버스는 모든 자리가 꽉 차야 출발한다. 그러니 가득 차 있는 쪽을 타는 게 좋다. 버스의 마지막 남은 자리까지 손님이 앉았는데 빨리 출발하지 않는다고 재촉하지 말자. 그 때 버스 안내양, 아니 안내군은 의자와 의자 사이에 간이 의자를 펼치기 시작할 거다. 그 의자에 모든 사람이 다 앉을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이 간이 의자는 승차감이 똥이기 때문에 시간이 급한 현지인이나 뭣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자리를 차지한다.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겠지만 화를 내기에는 너무나 이르다. 사람을 다 채웠으면 기름을 채워야 할 차례다. 버스는 터미널 옆에 붙어있는 주유소로 이동해 주유를 시작한다. 주유를 먼저 하고 승객을 태우는 게 좋겠다 제안하고 싶겠지만 이를 위해 당신은 싱할라어를 배워야 한다.


 어렵게 출발했다면 이제부터 유체이탈의 시간이다. 최대한 멍한 상태를 유지하기 바란다. 족히 열 시간은 이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달려야 한다. 꿀렁이는 엔진 바운스에 아침에 먹은 우유, 소시지, 달걀이 둠칫둠칫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면 얼른 창문을 열어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시자. 그러다가 앞자리 누군가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잽싸게 창문을 닫아야 한다. 창밖으로 분출되는 구토가 바람을 타고 뒷자리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누군가 얼굴을 내밈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착- 착- 착- 창문을 닫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아, 재미요소가 하나 더 있다. 버스의 가장 뒷자리는 애정행각이 허용된(?) 자리다. 심심할 때 뒤를 돌아보면 랜덤 확률로 19금 장면을 볼 수 있다.

구토를 유발하는 구불구불한 산길


 자고로 순례길이란 고생이 있어야 제맛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영겁의 시간을 견뎌내면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온통 차밭이라면 거의 도착한 것이다. 현지인들이 드문 드문 하차하기 시작하는데 연비 운전을 위해(?) 완전 정차해주지는 않는다. 속도가 웬만큼 줄어들었다면 뛰어내려야 한다. 착지에 실패해서 데굴데굴 구르는 경우도 물론 있다. 이런 면에서 스리랑카 사람들이 참 쿨하다 싶은 것이, 넘어지고 구르는 사람을 여러 번 봤지만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착지에 성공했다면 아무 캔틴이나 들어가 밀크티를 시키자. 캔틴(canteen)은 매점을 부르는 말이다. 영국 영어란다. 밀크티는 '끼리떼' 하나 주세요는 '에깍 덴느'라고 말하면 된다. 가격은 20루피쯤인데, 우리 돈으로 200원쯤이다. 달달한 연유가 들어간 밀크티가 10시간 동안 구겨져있던 오장육부에 활기를 더하는 쾌감을 만끽하자. 최근 콩까페가 한국에 진출하며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베트남의 '쓰어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파티는 이제 시작이다. 진짜 슈리랑카 홍차를 만나러 가보자.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내일쯤.

누와라엘리야의 파아란 하늘, 그리고 하늘을 닮은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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