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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Nov 10. 2019

나는 캔디에 사는 외국인

홍차 순례길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때문에 보통 누와라 엘리야로 직행하기보다 캔디를 경유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 첫 키스가 달콤한 것은 상상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홍차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실론 시대 마지막 왕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마을이 통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캔디에서 하차해 쉬었다 가기를 추천한다.

 나는 이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2년을 살았다. 캔디에 거주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범위를 외국인으로 넓혀도 나를 제외하면 3명밖에 없었는데, 스리랑카 크리켓 국가대표 코치로 온 영국인, 중국집을 경영하는 중년의 영국 남자와 어린 중국인 아내, 이게 끝이다.

 인도, 스리랑카 이쪽 동네에서 크리켓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서 커서 크리켓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꼬마들이 어느 동네를 가든 많고 많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 영입한 코치에 대한 대우도 상당히 좋아서 그는 으리으리한 집에 살았다. 길에서 마주치면 말을 걸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는 늘 차를 타고 다녀서 기회가 없었다.

 중국집을 하는 영국인은 종종 만났다. 인도와 더불어 스리랑카 사람들의 주식은 커리인데, 현지식은 커리밖에 없다 해도 큰 오류가 아니다. 다만 커리의 종류가 수십 가지라서 현지인은 삼시 세끼, 일 년 열두 달을 커리만 먹어도 질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외국인인 나로선 모든 음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신료 특유의 냄새 때문에 삼시세끼 커리를 먹는 것은 무리였다.

 속이 미식미식해지면 찾았던 식당이 영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이었다. 중국인 아내를 무시해서 영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이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인 사장이 주방을 진두지휘했고, 고난도 요리는 로컬 주방장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했는데 반면 중국인 아내는 가게에 잘 나오지도 않았고 나와도 카운터에 앉아 돈을 세고 있을 뿐이었다. 이 둘은 남자가 중국에서 영국 식당을 운영할 때 만났는데, 그 가게가 망하고 스리랑카에 여행 왔다가 이 도시에 반해서 정착했단다. 남자는 중국말을 조금 하고 여자는 영어를 조금 하기에 이 둘은 중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대화를 하는데, 100% 소통이 되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푸근한 인상의 영국 남자는 서비스로 'sweet and sour fried pork'를 자주 해줬는데, 정말 맛있는 찹쌀 탕수육 맛이었다. 하루는 어린 아내가 단골이던 나에게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 멀리 주방에서 나오는 영국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분명 경계의 눈빛이었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 탕수육 서비스는 없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는데 핵심은 외로운 이방인으로 2년을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참 많이 외로웠지만, 황홀하고 경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나는 캔디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첫사랑 민순이는 자기 이름을 참 싫어했다. 촌스럽다고. 그런데 나는 그 이름을 참 좋아했다. 얼마나 정감 있는 이름인지 송민순 써놓고 바라만 봐도 예쁘고, 소리 내어 불러봐도 귀엽고 예뻤다. 그런데 캔디라는 이름이 딱 그렇다. 게다가 캔디라는 이름은 누가 들어도 달콤한 이름 아닌가? 이름마저 달콤한 캔디의 매력은 내일쯤 공개하려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키스의 달콤함은 기대함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언덕에 올라 바라본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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