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유혹

by 바보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시계가 가지고 싶었다. 없는 것이 비단 시계뿐은 아니었음에도 유독 시계를 탐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늘 그렇듯 주변 친구였다. 과외비로 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 녀석이 무척 못마땅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부러웠다. 나는 당시 과외를 세 개 했고 그 친구는 달랑 하나를 했을 뿐이었지만, 내가 번 과외비는 등록금, 기숙사비, 식비, 교통비로 사용되어서 의류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유복한 그 친구는 등록금, 기숙사비, 식비, 교통비뿐 아니라 기본적인 의류비까지 부모님이 주셨기에 과외비로 번 돈은 시계, 선글라스, 향수와 같이 없어도 그만인 사치재를 사는 데 사용되었다. 그때마다 말은 안 했지만 심보가 뒤틀렸다.


과외 세 개를 하다 하나라도 끊어지면 보릿고개를 겪었는데 이 사정을 알리 없는 여자 친구는 100일 선물로 목걸이를 받고 싶다 했다. 그리고 본인은 금속 알러지가 있어서 금이 아니면 안 되는데 14k도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따라 씩 웃었다. 생각이 복잡했다. 난 시계도 없는데 금목걸이 선물이라니..


다음 날, 매 끼니를 시리얼로 때우자는 각오를 하고 난생처음 주얼리 샵을 찾았다. 가장 싼 것을 고를까 하다가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내 물건을 살 때 대부분의 경우 선택의 기준은 가격이었지만 선물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 싶었다. 수중의 돈을 살피고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예쁜 목걸이를 골라서 이걸로 달라고 했더니 줄은 어떤 걸로 할 건지 물었다. 알고 보니 내가 고른 것은 목걸이가 아닌 펜던트였다. 펜던트와 함께 디피 되어 있는 줄을 살 돈은 남아있지 않았다. 점원은 눈치껏 얇은 줄을 몇 개 보여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싼 것을 골라야 했다. 선물을 받은 여자 친구는 대번에 줄이 좀 얇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닌 게 아니라 화려한 펜던트와 얇디얇은 줄은 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민망한 모양새였다.


다음번 데이트에 그 친구는 목걸이를 하고 나오지 않았다. 왜 선물 받은 목걸이를 하지 않은 건지 무척 궁금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거 못 먹고 마련한 선물인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데이트 내내 물을까 말까 고민하다 헤어지는 순간에 결국 말을 뱉었고, 그 친구는 줄이 머리카락이랑 엉켰는데 줄이 끊어졌다는 민망한 답변을 했다.


찬란했던 20대를 미분해서 살펴보면 이렇듯 민망하고 찌질한 기억 투성이다.



성경은 욕망을 무저갱(無底坑)에 비유한다. 욕망을 소비로 채우려 함은 바닥이 없는 구덩이를 채우려는 헛된 노력과 같다는 말이다.

시계함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5개의 시계 중 복장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손목에 둘렀다. 그리고 뭔가 조금 마음에 안 들자 나이에 걸맞은 중후한 시계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여행 때 면세점에 들러서 명품시계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구입했던 g-shock 전자시계에 행복해하며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5개의 시계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괴물이 내 안에 들어섰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괴물로 규정하고 쇼핑의 욕망을 누르려 애쓰는데, 6번째 시계로 나의 욕망이 채워질 것만 같은 느낌은 왜 이리 유혹적인지. 5개의 시계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은 나의 무저갱이 명품 시계를 두르는 순간 드디어 가득 채워질 것만 같다.


'연말 보너스도 두둑이 받았으니 사도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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