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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snghwn Sep 26. 2020

의심, 불신, 분노, 그리고 방관

영화 <분노>

대부분의 분노는 곧 발산의 이미지에 가깝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부수고, 소리 지르고 하는 그런 방식. 하지만 이상일 감독에게 '분노'란 조금 달랐나보다.

영화 <분노>는 그가 담고싶었던 분노의 이미지를 표현한 일종의 분노설명서, 설득서, 혹은 안내서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분노>는 각기 다른 장소의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기본적으로는 자 범인이 누구인지 한 번 맞춰보십시오 하는 전개의 추리영화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조금씩 제공되는데, 사실 극의 후반부에 가서 조차 범인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분노> , daum영화
<분노>, daum영화


아니 범인을 맞추기 어렵다기 보다는, 애초에 영화의 흐름을 타고 가다보면 범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보는게 맞겠다. 흔한 얘기다.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던 단서의 끝에, 소중한 누군가가 서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 착잡함. 자기부정.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에 이입하다 보면 실은 범인이 그 누구도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을 갖게 된다.


<분노>, daum영화

감독이 안내하려고 했던 분노의 이미지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발산하는 것이 아닌 수렴하는 것. 발산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속으로 삭일 수 밖에 없는 참담함에서 오는 것.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의심은 태어난다. 혹시, 설마 하는 생각에 약간의 상상력과 일말의 사실이 덧붙어서 점차 의심은 확신으로 변모해 간다. 마침내 그것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찾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이미 그럴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 끝내 현실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는 분노로 빠져드는 과정에 있다. 가장 소중한 누군가라고 해도, 끝내 한 번은 의심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마치 스스로를 분노 속으로 내던지는 모양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는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의 초입에서, 곰팡이 퍼지듯 의심이 마음 곳곳에 번져나갈 때까지 오직 방관을 선택한 우리들이 말이다.


<분노>,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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