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노>
대부분의 분노는 곧 발산의 이미지에 가깝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부수고, 소리 지르고 하는 그런 방식. 하지만 이상일 감독에게 '분노'란 조금 달랐나보다.
영화 <분노>는 그가 담고싶었던 분노의 이미지를 표현한 일종의 분노설명서, 설득서, 혹은 안내서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분노>는 각기 다른 장소의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기본적으로는 자 범인이 누구인지 한 번 맞춰보십시오 하는 전개의 추리영화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조금씩 제공되는데, 사실 극의 후반부에 가서 조차 범인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아니 범인을 맞추기 어렵다기 보다는, 애초에 영화의 흐름을 타고 가다보면 범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보는게 맞겠다. 흔한 얘기다.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던 단서의 끝에, 소중한 누군가가 서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 착잡함. 자기부정.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에 이입하다 보면 실은 범인이 그 누구도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을 갖게 된다.
감독이 안내하려고 했던 분노의 이미지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발산하는 것이 아닌 수렴하는 것. 발산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속으로 삭일 수 밖에 없는 참담함에서 오는 것.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의심은 태어난다. 혹시, 설마 하는 생각에 약간의 상상력과 일말의 사실이 덧붙어서 점차 의심은 확신으로 변모해 간다. 마침내 그것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찾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이미 그럴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 끝내 현실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는 분노로 빠져드는 과정에 있다. 가장 소중한 누군가라고 해도, 끝내 한 번은 의심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마치 스스로를 분노 속으로 내던지는 모양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는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의 초입에서, 곰팡이 퍼지듯 의심이 마음 곳곳에 번져나갈 때까지 오직 방관을 선택한 우리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