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msnghwn Aug 20. 2017

당신은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영화  <더 테이블>

가끔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카페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일.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엿듣는 것'이기에 금기시되곤 하지만 사실 '남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다. 궁금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무슨 관계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하고. 완벽하지 않은 사실들로 타인에 대해 탐구하는 일은 위태롭지만 분명 재밌는 일일 것이다. 이때 독특한 점은, 타인의 모습에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다는 점이다. 나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타인의 인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영화 <더 테이블>은 아마도 그런 부분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카페라는 공간에 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관객은 인물들의 이름, 관계, 배경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엿듣는 것'처럼 인물들의 대화와 눈빛, 몸짓 등을 지켜보며 추리하면서 점차 알아가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다른 관객과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느낀 인물에 대한 인상은 미묘하게 달랐다. 오직 인물들의 대화가 전부였지만 모두가 본인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형식이 <더 테이블>을 최근의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게 하는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한다.

결국 <더 테이블> 속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관객 자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은 우리의 마음이 가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오늘 나눴었지?'하고. 

<더 테이블>,  이미지출처-Daum영화

<더 테이블>은 어떤 큰 스토리나 주제, 혹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만이 영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옴니버스 식으로 4쌍의 인물들이 나와서 대화를 하는 게 전부지만, 그 대화에는 관객의 시간과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전개와 리듬을 보고 있으면 이런 방식으로도 영화는 만들어 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의 큰 틀을 제외하더라도, <더 테이블>에서 주목해보면 조금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몇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몇가지를 꼽아보았다.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이후로는 영화를 보시고, 재미삼아 읽어주시기를 권합니다.              



1. 테이블이라는 공간.

<더 테이블>은 카페라는 공간에 시간대 별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대화를 담은 영화다. 그렇다보니 영화 제목처럼, 영화의 주된 소재는 테이블이다. 테이블은 상당히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누군가와 만난다면,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테이블은 만남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단절의 공간이 되는 셈이다.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테이블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장면을 영화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바로 두번째로 등장하는 경진과 민호의 씬이다. 경진과 민호는 여타 다른 인물들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후반부, 민호는 테이블을 가로질러 경진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불씨가 된다. 경진과 민호 사이에 있는 알 수 없는 간극이 민호가 테이블을 가로지른 순간 메워진 셈이다.  


2. 대사의 모호함.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도 상당히 흥미로운데, 대부분의 인물들은 대사에서 주어 혹은 목적어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화의 '맥락'이 중요해지면서 동시에 해석의 여지가 생겨난다. 아마도 관객이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는데, 이런 부분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몇가지 모호한 대사를 꼽아보자면 이렇다.

 "진짜 같다." " 그래도 허전하던데 여행 내내" "마음에 드세요?" 같은 것들.


3.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들.

마지막으로 눈길이 갔던 것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들이다. 처음 유진과 창석은 에스프레소와 맥주, 경진과 민호는 커피와 초코케이크, 은희와 숙자는 라떼, 혜경과 운철은 커피와 홍차. 묘하게도 인물들의 대화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들의 맛과 닮아있다. 인물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들을 내가 마시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가 주문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마시고 싶은 것일 수 있지만 때로는 감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몇몇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화 속 인물들이 바뀌어 감에 따라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웃기도 했고, 때로는 불편했고, 어느 순간에는 밑도 끝도 없이 아련해졌다. 그러나 결국에 남은 건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다. 좋든 싫든, 스쳐간 모든 것은 소중한 기억이었음을 되새기게 된다. 영화를 보는 그 1시간 동안에도, 이렇게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오는 것을 보면.


이 영화가, 스쳐 지나간 당신의 이야기와 마음들을 잠시라도 떠올리게 하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서툰 우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