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
영화 <시인의 사랑>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수 이소라가 부른 노래 중에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이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사랑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외면하고 싶어도 나는 어느새 너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고. 나조차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노래의 제목을 생각할 때, 말하자면 그게 사랑 같은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그런 속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준, 혹은 좋아하게 됐음을 알게되는 신호는 명쾌하지 못하다. 다만 애매한 느낌 혹은 인상만으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를 저울질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바로 그 사랑의 모호한 경계를 꼬집는다.
현택기(양익준 배우분)는 시인이다. 그는 시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썩 유명한 시인은 되지 못한다. 그가 쓴 시에는 삶의 팍팍함이나 애환이 없다는 이유다.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동인 모두에게 인정받는 시를 내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건 도너츠 가게의 알바생이 한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한 시였다. 택기 본인의 삶 혹은 그만의 일상으로만 빚어낸 것이 아닌 셈이다. 그때부터 택기는 알바생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몰래 알바생을 훔쳐보기도 하고, 쫓아다니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그의 삶에 관여하기까지 한다.
처음에 택기는 그저 순전한 호기심으로 알바생에게 관심을 보였다. 자신과는 달리 삶 자체가 고통과 불행인 사람. 분명 흥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비춰지는 택기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이의 얼굴과 닮아있다. 그러나 택기의 아내는 택기에게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상하다고. 그렇다. 택기라는 인물은 시인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다. 그러니 택기가 느끼는 사랑 같은 감정을 느꼈다면, 그건 불륜인 셈이다. 그러나 불륜의 감정이나 사회적 테두리를 들어냈을 때, 택기가 느끼고 있는 것은 사랑이 맞을까.
<시인의 사랑>은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거나, 내가 사랑을 하는 중이라는 티를 내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에서처럼. 그저 상황과 대화를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 대부분이 시인은 사랑을 했다고,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랑을 했다고, 사랑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그건 영화 내내 보여진 택기와 알바생의 모습이 단순히 친한 두 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묵묵히 계속 지켜보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서로 의지한다. 서로가 본인의 마음조차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이러하니, 영화의 제목은 '시인의 사랑'이지만 오히려 시인이 아니라, 일반 남성의 그것도 가정이 있는 남성의 사랑 같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꽤 슬프다. 택기가 그의 아내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 같은 것이라고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니까. 영화의 말미에 택기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음에도 눈물을 흘린다. 정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택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본인의 사랑은 과연 어느 쪽이었나에 대해 관객에게 따져 묻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는 제주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돼 있다. 절로 행복해지는,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그러나 제주는 동시에 처연한 공간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동시에 추하기도 하다. 그것을 같이 바라볼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아마도 사랑 같은 것이 그런 것이지 않을까. 아름다웠던 것을 추하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하는 그 무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