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박준
박준 작가의 시를 읽다보면, 드는 감정은 ‘떨림’이다.
떨린다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설렘에서 오는 떨림도 있을테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도 있으며, 추위와 같은 외부의 것에 의한 떨림도 있다.
‘그해 봄에’는 박준의 시들 중에서도 가장 나를 떨게 만든 시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이라니.
첫 문장부터 불안함은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고 하니, 약간은 안심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비치는 검붉은 테가, 당신의 곁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닌 내가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아마도 화자는, 왜 봄에 죽으려 했냐고 물으며 온 몸을 떨었을 것이다. 이유라도 알면, 미리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막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는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계절은 우연일 뿐. 할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지막 문장은 시를 읽는 내내 벌벌 떤 독자에게, 작가가 내미는 따스한 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 가득하니 통제할 수 없음에 불안해 하지 말라고 말이다.
떨림이 잦아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풀 죽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있고, 통닭은 아직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