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입지 않은 옷의 사유 방식으로
위 영상은 AI 입니다
바람도 없이 정지한 청바지 한 벌.
몸은 없고, 오직 형태만 남은 실루엣.
주름마저 피팅되어 있지 않은 무重의 핏.
그곳엔 누가 있었는가 — 아니, 누가 있어야 하는가.
입지 않은 옷이 전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부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형태 속에서 우리는
형태와 본질 사이의 긴장을 마주한다.
불교에서 ‘의복’은 탐욕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의 수단입니다.
몸을 가리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가리지 않기 위해 벗어내는 것.
이 장면은 '무착(無着)'의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
입지 않아도 그 본래의 쓰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있으되, 쓰임은 비어 있다.
핏감이란, 누군가의 움직임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이 청바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형태는 남았지만, 의미는 흩어집니다.
핏이 사라질수록, 본질은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옷을 입지 않은 옷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비어 있는 자리에 대해 묻습니다.
“몸이 있어야 핏이 되는가,
아니면 핏이 있어야 몸이 있는가.”
그 핏감의 경계에서 — 우리는 창작합니다
입혀지지 않은 청바지처럼,
우리는 형태만 남겨두고, 감각을 기다립니다.
핏이 만들어질 그 찰나를 향해,
침묵을 입고 사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