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품추구

무처의 꽃, 혹은 응하지 않는 손

— 그러나 그 무엇보다 ‘도달하지 않는 방식’으로

by kmu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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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은 AI 입니다




음영反轉된 손 —

빛이 빠진 세계에서 반대로 빛나는 꽃 두 송이.
거품처럼 가벼운 형상들이
손 위에 도달하기 전, 멈추지 않고 부유한다.


그것은 내려오는 중이 아니라
닿지 않음의 형상이다.




손이라는 ‘주체’ vs 꽃이라는 ‘비-접촉의 객체’


잡지 못하는 손.

닿지 않으려는 꽃.

마치 존재와 인식이 충돌하듯,
현상과 의식은 교차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접촉'의 실패가 아니라
접촉을 의도하지 않은 상태이다.




불입처처(不入處處)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꽃은 '오지 않는다'.
손도 '움켜쥐지 않는다'.


이 부유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머무름 없이 주는 자비의 손.

그 손은 꽃을 붙잡지 않기에,
꽃은 물들지 않는다.


또한, 이 장면은 불입처처(不入處處) —
"들어감이 없는 곳이 곧 모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불이의 진리를 시각화한다.




꽃이라는 이름이 붕괴하는 순간


이 꽃은 향기도 없고 색도 없으며 질감도 없다.
단지 빛의 역상(逆像)으로만 존재한다.


"그것이 꽃인 줄 알았던 순간, 꽃은 아니었다."
《반야심경》을 따라,
모든 것은 공(空)이기에,
이 또한 하나의 공화(空華) —
"허공 위에 핀 꽃"이 될 수 있다.




손을 뻗지 않는다.

움켜쥐지 않고,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저 떠오르는 감각,
비-도달의 사물들을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의 경계에서 관조할 뿐이다.

비상비비상은 상(想)도 아니고 비상(非想)도 아닌 — 즉 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중간의 경계’로, 감각과 생각이 거의 사라진 초월적 집중의 세계다.


그 부유의 끝은 닿음이 아닌 멈춤이며,

그 멈춤의 틈에서 — 우리는 창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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