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품추구

무명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한 순간

— 그러나 그 무엇보다 무아(無我)의 방식으로

by kmu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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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은 AI 입니다




무경계의 질주


푸른 능선과 솟구친 구름 아래,
인물은 팔을 벌린 채, 산과 숲을 가르며 날아간다.

중력은 사라지고, 땅은 흐릿해진다.

그의 몸짓은 새가 아닌데,
하늘과 산맥은 마치 그를 인정한 듯 열려 있다.




인간 vs 비조형


인간의 형상이 날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비행’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의 ‘의식적 해방’이다.

달리는가? 떨어지는가? 떠오르는가?
그 모든 운동성은 실상 하나의 착각일 수 있다.




무주(無住)의 현현


이 장면은 무주심(無住心)의 구현이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그 어디도 붙들지 않는 의식의 흐름.

《금강경》에서 말하길,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머물지 않음 속에서 마음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산에 있지 않으며,
하늘에도, 몸에도, 감정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떠도는 움직임은 곧 무상(無常)이며, 무아(無我)이다.




중력의 소멸, 자아의 해방


몸은 있으나 무게는 없다.


형상은 있으나 중심은 없다.


이 장면은 하나의 자아가 서서히 해체되어가는 은유 —
산과 하늘 사이,
그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부유합니다.


이 땅 위에 있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처럼.


그 떠오름과 낙하 사이에서,
우리는 ‘고정된 형상’을 믿지 않습니다.


그 무게 없는 비행은 우리의 태도이며,

그 무주의 흐름 끝에서 — 우리는 창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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