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품추구

나는 죽음을 너에게 쓴다

— 그러나 그 무엇보다 “기억의 사라짐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by kmu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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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은 AI 입니다




빛보다 어두운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검은 프레임 위에 울려 퍼지는 소녀의 표정.


낡은 VHS 화질처럼 희미하게 번지는 소녀의 기억들.


움직임은 정적에 가까우며, 시선은 늘 부재의 언저리에 있다.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느낌보다, 시간이 "지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더 뚜렷하다.




소녀의 정지된 기억


현존하는 자들은 움직이지만,
프레임 너머 사라진 존재들은 고정된 채 남아 있다.


흘러가는 삶의 흐름은 ‘기억의 무게’를 지우지 못하고,
카메라는 끝없이 그 ‘없음’을 소녀는 응시한다.




無得(무득)의 카메라, 無住(무주)의 편지


이 영상은 집착하지 않는다.


죽음도, 상실도, 기록도, 하나의 상(相)으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이 영상은 無得 — 얻지 않음의 태도로
단 한 줄의 편지조차 “남기지 않는 것”을 택한다.


그리움조차 부유하게 놔두는 무주(無住)의 세계.




涅槃寂靜(열반적정)의 몽타주


낡은 집, 손 흔드는 아이, 침묵하는 노인,
그리고 마지막을 담지 않은 장례식.


이 모든 것은 죽음을 증언하지만,
죽음은 결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부재 자체가 곧 열반이며, 그 정적이 적정이다.

고요한 죽음, 그리고 조용한 사랑.




기억은 색이 아니라 질감이다


흑백으로 바래진 필름, 노이즈 섞인 사운드,
표정 없는 얼굴, 흔들리는 소녀.

기억은 서사로 남지 않고,
살결 같은 질감으로 남는다.




즉비기억(卽非記憶)


기억은 있지만, 기억이 아니다.
그리움은 있지만, 누군지를 말할 수 없다.

이 영상은 공사(空使)의 시선으로
"기억이라는 형상을 짓되, 동시에 허물어뜨린다."

이는 즉비기억(卽非記憶) — 기억 같지만, 기억이 아닌 것.
그 공백 속에서 진짜 감정이 피어난다.




지(止)와 관(觀)의 시선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우리는 안에서 ‘멈춘다.’

카메라의 시선은 지(止)이고,
소녀의 표정은 관(觀)이다.

이것은 곧 지관쌍운(止觀雙運)의 몽타주 수행.




그 장면의 끝에서


잊히는 장면, 잊히는 몸짓, 잊히는 호흡.


우리는 그것을 '붙잡지 않는다.'
단지 떠나는 모든 것들에게 한 줄의 無言을 보낼 뿐이다.


그 無言은 우리의 태도이며,

그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에서 — 우리는 창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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