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무엇보다 ‘무명(無明)의 한 알씩을 끊어내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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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손으로 기억한다.
말라버린 손끝에서, 단주의 알이 하나씩 굴러간다.
파인 주름 사이로 흐르는 시간,
그곳은 이미 色心俱寂(색심구적) — 형상도 마음도 멎은 자리.
단주 하나가 굴러갈 때마다,
업장은 무너지고, 번뇌는 사위어진다.
이는 一念一斷(일념일단) —
하나의 생각이 일 때, 하나의 집착을 끊는 길.
108개의 알은 곧 108번의 無明破裂(무명파열)이다.
손끝은 계속 굴리지만,
마음은 굴리지 않는다.
이것은 ‘돌림’이 아니라 ‘놓음’이다.
轉識成智(전식성지) —
분별의 식(識)을 지혜(智)로 바꾸는 윤회 탈출의 움직임.
각 알은 어두운 듯 보이나,
그 회전마다 佛光(불광)이 퍼진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빛은 마음으로 확장된다.
이는 光明三昧(광명삼매) — 보이지 않되 빛나는 참된 자리.
이 수행은 소리 없고,
형상 없고,
설명도 없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무량공덕(無量功德)이 이미 쌓이고 있다.
단주의 목적은 셈이 아니라, 셈의 해체다.
숫자 속에서 집착은 생기고,
숫자의 해체 안에서 空性(공성)이 열린다.
이는 ‘헤아림의 멈춤’이며,
無數三昧(무수삼매) — 수 없이 많은 수행이 하나로 귀결되는 자리.
그 한 알의 침묵 속에서 — 우리는 창작하지 않고, 관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