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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Sep 21. 2021

시작을 해야 가능한 일

'부럽다'는 말 대신

아마도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즉 ‘만만해 보이는’ 작품에 도전했다면 이번에는 ‘내게 버거워 보이지만 예쁜’ 작품에 도전 중이다. 완성하는데 한 일주일 정도, 아니 그 이상도 걸릴 수도 있겠다. 벌써 나는 가방을 만드는 수고로움보다 내 손 땀이 들어간 가방에 책을 넣고 카페에 가거나 아이들과 나들이  상상에 부풀어 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시작의 장벽은 좀 더 낮아진다.


이번에 우연히 마주한 썸네일을 보고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을 느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번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가방에 도전하고 싶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려워서 못해. 아직 내 수준에는 무리야.' 하고 그냥 지나쳤을 법한 디자인인데 말이다.


그동안 큰 가방을 만들 때는 단순한 뜨개 기법으로 깔끔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가방은 좀 다르다. 꽈배기, 팝콘 뜨기, 입체적 줄무늬 등 여러 기법을 사용해 그야말로 화려하지만 뜨기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유튜브 선생님도 ‘초보 분들은 뜨기 어려우실 거예요’라는 말로 내 예상에 힘을 실어 주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평소 내가 하던 대로 조금 쉬운 패턴의 가방을 만들어 작업 시간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조금 어렵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볼 것인가.


어느 날 친구가 하노이에서 지내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 브런치에 글 쓴다며? 그리고 가방도 만들어? 팔자 좋네. 정말 부럽다” 책을 꾸준히 읽는 나를 보며 주변 엄마들이 말한다. “어쩜 그렇게 책을 꾸준히 읽어요? 부럽다”


그들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나를 보고 ‘부럽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부럽다’라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아님 나를 보고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했던 말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진심으로 내가 부럽다고 느꼈다면 ‘브런치에 글은 어떻게 써요? 저도 방법 좀 알려주세요’, ‘코바늘 재료는 어디서 사요? 처음에는 뭐부터 시작해야 해요?’, ‘해외에서 한글 책은 어디서 구해서 봐요?’란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친구가 만든 뜨개 가방을 보고 "이건 어떻게 만들어? 실은 어디서 사?"라고 물었던 것처럼. 나는 직접 가방을 만들 수 있는 그 친구의 재주가 진심으로 부러웠고 나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럽다’라는 친구의 말에 ‘그럼 너도 글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뜨개도 시작해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억누른 체 “하노이에서 마땅히 할 게 없어서”란 말로 대신했다. 40세가 넘어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그럼 너도 해봐’라는 말처럼 그렇게 쉽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수많은 장벽을 넘어야 하는 일임을 나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보지 않은 길을 갈 때,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면 항상 찾아오는 녀석들이 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중간에 그만 둘 거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게 낫지.’와 같은 자기 의심.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벌써 많은 데 내가 지금 시작해도 될까’와 같은 남과의 비교. ‘내가 이거 해서 남는 게 뭐야?’, ‘이거 하면 미래가 달라지나?’로 가보지 않은 미래를 미리 점치는 비관적 투시력까지. 나도 항상 찾아오는 그 녀석들 때문에 두렵고 갈등하고 주저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뜨개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또 재료만 사다 놓고 며칠 하다 말겠군’이란 말로 내 시작의 불시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이렇듯 자기 비관과 주변의 부정적 시선까지 더하면 시작하고자 하는 의욕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내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길들일 때, 처음으로 코바늘을 손에 잡을 때 난 ‘자기 의심’, ‘남과의 비교’, ‘비관적 투시력’과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가 이기나 가 이기나 해보자'란 심정으로 들이대 보는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시작이 있어야 중간도 있고 끝이 있는 거 아닌가. 시작이 있어야 중간에 멈춤이 있어도 ‘나 예전에 해본 게 있으니 다시 할 수 있겠네.’라며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거 아닌가. 시작이 있어야 아름다운 결실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결과가 어찌 됐든 해보기로,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나기로, 끝을 미리 점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고민 끝에 새로운 스타일 작품에 도전 해기로 했다. 역시 설렘을 동반한 시작은 달콤하다. 바닥을 만들 때는 ‘이 정도는 할 만하네.’, ‘나도 이제 초보 딱지 떼는 건가?’라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문제는 가방 옆면을 만드는 데서 시작됐다. 입체적인 무늬를 만드는 다양한 기법이 계속 사용되다 보니 정확한 곳에 바늘을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 뒤로 마주 보는 위치에 똑같은 무늬가 생겨 완성도 높은 가방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보인다.


영상과 가방을 번갈아 보며 몇 날 며칠을 심취해 있었더니 손에는 쥐가 났고 눈이 쾡해졌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작업을 멈춘 후 내가 뜬 가방을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봤다. 결국 난 반 정도 완성한 작품을 ‘너무 느슨해서’라는 이유로 형제도 남김없이 풀고야 말았다. '미련 없이 놓아주기'는 뜨개를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자세다. 시간이 지나도 후회 없이 만족할 만한 녀석을 만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쓰디쓴 고난의 과정이다. 다시 시작한 작업에서도 바늘을 잘 못 넣어서, 무늬가 대칭으로 안 나와서, 손 땀이 마음에 안 들어서 등의 이유로 나는 여러 번 '놓아주기'를 반복 중이다.


이 가방이 언제쯤 완성된 지는 모른다. 지금은 쓰기만 한 고난과 시름 중이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어느 사탕보다도 달콤한 끝맺음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달콤한 끝맺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다. '부럽다'는 말 대신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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