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왼손을 살펴본다. 오른손으로 왼손 전체를 감싸며 마사지하고,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눌러주고, 손깍지를 끼고 손목을 몇 번 돌려본다. 이렇게 손가락에 내가 깨어났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면 그제야 주먹을 쥐어보는 시도를 한다.
'아, 오늘도 안 되네.’
주먹 하나 쥐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이야. 단계적으로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다섯 손가락 끝과 끝이 만나게 가운데로 모았다. 다음으로 손가락 가운데 마디가 봉긋하게 위로 솟아 올리며 아치 모양을 만들었다. 이제 힘을 좀 더 내볼 차례다. 모은 손가락 끝이 손바닥에 닿도록 최대한 안쪽으로 당기기만 하면 된다. 나의 온 정신은 왼손을 응원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뇌까지 찌릿찌릿해지는 불편감이 느껴졌다. 오늘도 '왼손 주먹 쥐기’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왼손은 이내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사르르 펼쳐졌다. 원래 대로 되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왼손으로 주먹 쥐는 일이 힘들어졌다. 바로 세 번째 손가락 때문이다. 한 번씩 주먹을 쥘라 치면 셋째 손가락 관절에서 들려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견뎌야 했다.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아우성이다. 정녕 이 손가락이 내 신체의 일부분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유자재로 언제든지 사용 가능했던 녀석이 갑자기 변하니 혼란스러웠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세 번째 손가락끼리 조금만 붙으려 해도 서로를 완강히 거부했다. 부드러운 윤활유 역할을 했던 연골의 존재는 미미했고 대신 관절에서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주먹 쥐는 데 성공하면 다시 손가락을 펼쳐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 뼈마디 관절을 부드럽게 부여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나서야 겨우 왼 손은 활짝 펴졌다.
2017년 둘째를 낳고 손바닥 통증을 느낀 후로 손에 이상을 느낀 건 4년 만이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니 손가락 사이에 있는 신경이 부었다고 했다. 그때는 출산 후 얼마 안 된 시기이고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니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가지 않아도 그 불편함의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바늘을 하기 위해선 양 손이 모두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양손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 오른손은 코바늘을 잡고 한 코 한 코에 위로 아래로 이리저리 바늘을 찔러가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반면 왼 손은 실을 잡고 쭉 고정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중 셋째 손가락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바로 이 손가락이 텐션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즉, 느슨하게 떠지느냐, 촘촘하게 떠지느냐를 결정하는 게 뜨개에선 텐션이다. 같은 실로 같은 작품을 만들어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도, 일정한 뜨개 무늬가 나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텐션이다. 그만큼 한 작품을 만드는 동안 일정한 텐션을 유지하는 일은 곧 셋째 손가락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이 손가락은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쭉 편 상태로 엄지손가락과 맞닿아 실을 잡는 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몇 개월 하다 보니 손가락에 탈이 난 거다. 어느새 구부리는 자세가 불편해졌고 주먹 쥐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런 손가락 덕분에 웃픈 상황도 연출된다. 집 안에 널브러진 아이들 장난감을 치울 때나, 설거지를 할 때,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 택배 온 물건을 받을 때 등 손가락을 구부릴 일이 참도 많다. 다른 손가락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구부리지만 어쩔 수 없이 가운데 손가락만은 여전히 꼿꼿한 자태를 뽐낸다. 의도치 않게 전에 해 본 적 없는 손가락 욕 모양이 취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웃픈 상황인가. 불편한 손이 만든 이상한(?) 동작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오히려 잠시나마 ‘코바늘을 그만두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약한 마음에 대한 질책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는 내 손가락이 절대 밉지 않았다. 이 또한 나의 일부분인 것을. 내가 아픔을 안고 사랑하고 어루만져 줘야지.
가끔씩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고 떠도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 소녀가 내 안에서 불쑥 나타날 때가 있다. 그동안 그 소녀를 꽁꽁 숨기려 노력했지만 조금만 틈이 보이면 곧바로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튼튼한 갑옷만을 찾았다. ‘이제는 제발 그만 좀 나타나라고! 나 좀 그만 찾으라고!’ 소리치고 발버둥 쳤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또한 내 그림자임을 깨달았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 주변에 항상 붙어있을 그림자. 나를 아프게 하지만 내 신체의 일부분인 셋째 손가락처럼.
이제는 아픈 손가락을 감싸고 마사지하듯 나약한 어린 내가 찾아오면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의도치 않게 손가락 욕이 만들어져 웃었듯이 ‘그것도 인생의 일부분이야’라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때론 상처의 원인을 차단하기보단 보듬고 어루만지는 지혜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