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우리 셋은 2019년 8월 20일 처음으로 베트남 땅을 밟았다. 이제 우리는 몇 년 동안 베트남 중 이곳 하노이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야 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한 번쯤 내 인생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나는 기존의 묵은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나의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하니 막 흥분되기 시작했다.
첫날은 여행 온 듯 우리 셋은 마냥 들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하고 습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 눌렀지만 남편과 아빠에 대한 그리움까지 누르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금새 아빠 얼굴을 알아채고 ‘아빠~’를 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5개월 만에 완전체가 되었다. 우리 가족이 한 공간에 얼굴을 마주보며 모여 있으니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10월부터 살게 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이 좁기도 하고 주변에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마땅치 않아 집을 옮기기로 했다. 하노이의 집값은 생각보다 비쌌다. 적어도 외국인인 우리한테는 그랬다. 한국인들은 주로 보안이 잘 되고 외국인들이 많이 살며, 깔끔하고, 주변에 한국 편의시설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그런 곳은 어김없이 집값이 비싸다. 그리고 한 아파트라도 집집마다 인테리어가 가지각색이어서 발품을 많이 팔아야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한국은 벽지, 장판 등 기본적인 인테리어를 다 하고 집을 분양하지만 여기는 그냥 시멘트를 발라놓은 상태에서 집을 분양한다. 집주인이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열 군데 정도 집을 둘러본 후 가장 깔끔한 한 곳을 정해 하노이에서 첫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 배로 부친 짐도 도착했기에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노이 살이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아이들 학교는 집 근처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영어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집과 아이들 학교가 결정되니 한시름 놓였다. 우리가 살기로 한 아파트에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살며 아파트 주변에는 한국음식점과 한국 재료를 살 수 있는 K-MART가 있어 살기에 전혀 불편함도 없었다. 굳이 베트남어를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여기가 한국인지 하노이인지 모를 정로로 우리는 잘 적응해갔다. ‘외국에 와서 사는 것도 별거 아니네’란 생각까지 들었다. 적어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10월 중순 하노이 생활에 잘 적응한다고 느낄 즈음 깜짝 놀랄만한 일이 생겼다. 하노이에 와서 그렇게 놀랐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존재는 ‘여긴 한국과 다른 하노이고 아직은 낯설지?’라고 내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날은 늦게 퇴근한다는 남편 말에 아이들과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놀이터에서 즐겁게 논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평소대로 거실 불을 켜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바로 목욕탕으로 가서 씻자.”
“엄마 그런데 저게 뭐야?” 1호가 깜짝 놀라 말했다.
“뭐가 있어?”
“저기 봐봐. 뭐가 있어.”
아이들은 한쪽 벽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흰색 시멘트 벽이라 낯선 물체는 더 쉽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집에 어떤 낯선 존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얘들아 오지 말고 여기서 잠깐 서있어. 엄마가 가서 보고 올게.”
아이들에게는 씩씩하게 말했지만 내 가슴은 낯선 존재의 습격에 벌써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서 가까이 다가가 바라봤다. 그 물체는 바로 말로만 듣던 ‘도마뱀’이었다. 원래 도마뱀은 숲 속에서 사는 녀석 아니던가? 도마뱀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도 ‘도마뱀이다!’ 외치며 처음 보는 도마뱀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말속에는 낯선 생명체에 대한 무서움과 책에서만 보았던 도마뱀에 대한 호기심이 같이 섞여 있음이 느껴졌다. 그 녀석도 곧 우리의 존재를 느꼈는지 꼬리를 흔들며 천장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밖에다 내다 버리지? 도저히 손으로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한참을 고민할 동안 도마뱀도 '잡히지 않으려면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라며 고민하듯 한 자세로 쥐죽은 듯이 있었다. 약 10분 동안의 대치 끝에 그 녀석은 천장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곧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건 좋았지만 우리 집 어딘가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여전히 끔찍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방역업체를 불러 방역을 시작했다. 방역업체 아저씨로부터 도마뱀은 주로 천장에 달린 에어컨 구멍으로 집집마다 옮겨 다니며 지금 우리 집에 도마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화장실 천장을 열어보니 쥐가 다닌 흔적이 발견되어 약을 뿌려놓았다고 하셨다. 도마뱀과 쥐의 존재를 느끼며 살다니 여긴 확실히 하노이가 맞았다.
그 후 도마뱀은 밖에서도 자주 보아 친숙한 동물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도마뱀을 발견하면 놀라지 않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쳐다본다. 하지만 난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특히 집안에서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라는 건 여전하다. 처음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알아서 도망가겠지’라며 조금은 느긋해졌다는 것이다. 이 녀석도 언젠가는 깜짝 놀라지 않고 마주할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