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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Nov 13. 2021

어지러움 속에 찾아온 마음의 햇살

 살아줘서 고마워

난 요즘 환경이 사람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체험 중이다. 요 근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주거지가 바뀌면서 내 생활패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2년 동안 더운 날씨만 경험하다 만난 한국의 추위는 나를 더욱 움추러들게 했다. 일 년 이상 지속해온 새벽 기상 습관은 이미 깨졌고 번데기처럼 따뜻한 이불속에서 몸을 꽁꽁 싸매는 일이 소소한 행복이요, 찬 공기가 흐르는 이불 밖으로 내 몸을 일으키는 일이 요즘 가장 힘든 일이 되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나면 집안일이 나를 기다린다. 나 혼자라면 대충 눈에 띄는 거 아무거나 먹을 테지만 홈스쿨링 같지 않는 (놀이중심의) 홈스쿨링 중인 아이들이 있기에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청소할 부분이 ‘나 여기 있소’하며 손짓을 보낸다. 예전에는 먼지가 있어도 신경 쓰지 않던 부분이 이상하게 눈에 자주 띈다. 아무래도 이전 세입자의 흔적을 빨리 지우고 싶은 나의 욕심이 작용한 탓이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지워지지 않은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나온 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입자의 짐이 모두 빠졌음에도 집 곳곳에 남긴 얼룩을 보고 난 그들의 생활 습관을 짐작했다. 존재감 없는 먼지들이 베란다 창틀에서 마치 한 몸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창틀은 그들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레인지 후드를 보고 예전의 나처럼 후드 청소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거실 타일 벽에 묻은 정체 모를 자국들이 무엇인지 유추해 보려 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한계가 느껴졌다. 같은 책에는 작가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가 나온다. 새하얀 침구와 모두 새 걸로 정돈되어있는 물건들에선 이전 투숙객의 흔적을 느낄 수 없어서 좋다고. 정리 정돈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그만이라고. 난 호텔 청소담당자처럼 이전 세입자의 흔적을 열심히 지우는 중이다.


일주일간 이어진 강행군 탓에 결국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퉁퉁 부었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추위 탓에 몸의 근육도 바짝 긴장했고 상체와 하체는 따로 놀아 이 몸이 과연 내 몸 뚱아리인지 남의 몸뚱이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베트남에서 짐이 오지 않았기에 밥 한 번 먹을라 해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고 반찬을 나를 쟁반이 없어 부엌을 서너 번 반복해서 움직여야 했다. 몸도 지치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며 내 마음에도 파도가 요동쳤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이래저래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 통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 안부를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한 가슴 한편에 꾹꾹 담아 온 대상이 있었다. 바로 사촌언니다. 사촌언니는 몇 달 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 투병 중이다. 몇 개월 전 엄마로부터 언니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너무 힘들어한다고, 이미 온몸에 암이 다 퍼졌다고, 의사가 생존확률이 50%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생존확률 50%. 언니는 생과 사의 경계선 딱 중앙에서 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안부를 물었다간 괜히 안 좋은 소식을 들을까 내심 두려웠다. 마음은 언니로 가득 찼지만 차마 연락은 망설여졌다.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언니에게 혹시 내가 부담이 되지 않을지, 귀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던 중 엄마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이모랑 통화했는데 OO가 이제 항암치료가 끝났대. 온몸으로 퍼졌던 혹들도 다 들어가고 이제 조금 괜찮아졌나 봐. 3개월 후에 다시 와서 검사받으라고 했대.”


놀라운 일이다. 언니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암흑 같은 시간 동안 나는 사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받을 충격을 애써 흡수하기 위한 나름의 안전장치를 세웠던 거다. 그 소식을 들으니 꼭꼭 숨겨두어 돌덩이처럼 굳었던 마음의 짐이 어느 정도 내려앉았다. 용기를 내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또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하긴 싫었다.


“언니 아프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부담스러울까 봐 연락 못했어요. 이제 좀 괜찮아요? 힘들어도 밝은 생각하고 힘내요. 언니 긍정적인 사람이잖아요. 언니의 밝고 건강한 모습 꼭 보고 싶어요. 언니 정말 힘내요!!”


몇 시간이 지난 후 언니에게 답장이 왔다.


“알라야 오랜만이야. 치료 잘 끝나서 이젠 괜찮아. 서로 좋은 일로 연락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모한테도 그렇고 면목이 없다. 다들 걱정해주고 기도해주신 덕분에 항암이 잘 끝난 거 같아. 연락 줘서 너무 고마워.”


지금 내 몸이 힘든 건 언니가 힘들었던 거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겪어보진 않아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항암 치료를 이렇게 잘 버터 준 언니가 고맙고 감사했다. 이전 흔적을 지우는 중에 떠올린 언니와의 추억은 내 기억 속에 얼룩처럼 남아있어서, 앞으로 얼룩을 더 남길 수 있어서, 그야말로 살아줘서, 고마웠다.  


언니의 문자 한 통에 얼음장같이 차갑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어지러웠던 내 마음에도 고요한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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