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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Nov 09. 2021

2년 만에 밟은 한국 땅

자가격리 중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란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코시국에 겪는 출국심사구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천방지축 아이 둘을 데리고 선 줄에선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한 단계가 끝나면 우린 어린애 셋마냥 공무원이 안내해주는 손짓을 따라 다음 단계로 쫄래쫄래 바삐 움직였다.


입국심사 중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나와 딸은 격리 면제자고 예방접종을 맞지 않고 만 6세가 지난 아들은 격리 면제자가 아니기에 나는 시간을 아낄 겸 필요한 어플을 모두 깔고 하노이에서 출발했다. 군인처럼 보이는 젊은 관계자가 내 핸드폰에 깔린 어플을 작동하더니 뭔가 문제가 있는 듯 갸우뚱거렸다. 


“어?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데 왜 안되지?”


급기야 옆에 있는 다른 관리자를 불렀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격리자 관리 어플과 능동적 감시자 어플이 동시에 작동되지 않은 시스템 탓이었다.


“우리도 여태껏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원래는 하나의 핸드폰에 면제자면 면제자만, 격리자면 격리자만 관리하게 되어있어요. 동시에 두 가지 경우 관리가 안되요. 그럼 아드님은 어플 말고 전화로 건강상황을 알려주는 걸로 할게요. 지역구 공무원이 전화를 하면 건강상태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직은 시스템적으로 허점이 보였다. 나중에 지역구 공무원이 전화했을 때 이 상황을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지만 이전에 없던 업무에 갑자기 투입되어 애쓰시는 분들 덕분에 안전하게 한국에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2년 3개월 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역시 코시국에 한국땅을 밟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도착하고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공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습도 높은 날씨 대신 냉랭한 기운이 코끝에서 스치는 걸 보니 한국이란 게 실감이 났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적응이 안 되는지 아이들은 발을 동동거렸다. 아이들에게 서둘러 외투를 입히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도 긴장한 마음이 풀어지며 마음을 놓고 창밖을 내다봤다. 방역 택시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엄마 하늘 색깔이 무지개 빛이야. 나뭇잎이 알록달록해.”


막 동트기 시작할 무렵 하늘빛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파스텔톤으로 물들인 하늘과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의 조화는 어느 그림 못지않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졸린 기운을 몰아내고 한동안 창 밖의 세상에 심취했다. '한국, 참 아름답다.' 계속 한국에서 살았다면 당연해서 몰랐을 이 풍경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공항에서 바로 보건소에 가는 걸로 예약했건만 예상보다 비행기가 일찍 도착했고 주말이라 차도 안 막혀한 한 시간 가량 텀이 생기고 말았다. 보건소는 9시에 열고 집 근처에 다다르니 오전 8시에 되었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우선 집으로 가서 짐을 풀고 다시 보건소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맞이하게 된 집. 나도 이렇게 설레는데 5살, 3살에 베트남으로 떠나 한국 집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아이들의 기대감은 하늘 끝까지 부풀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햇살이 거실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꼭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비춰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집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내 방, 내 방’하며 찜 놀이에 바빴다. 나는 먼저 집에 새로 들어온 냉장고, TV, 세탁기에 먼저 눈이 돌아갔다. 냉장고 속에는 이미 먹거리가 가득 채워있었고, 꼭 누가 살던 집처럼 냄비, 그릇, 수건, 생활용품 등 살림살이가 한아름 놓여있었다. 이미 양가 부모님께서 집안에 온기가 돌게 사랑을 채워주신 거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지. 앞으로 펼쳐질 자가격리에 대한 쓸쓸함도 아쉬움도 느낄 새 없이 따뜻함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하노이 마지막 밤에 악몽을 꿀 정도로 가득했던 걱정도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나와 아이 둘. 셋으로 시작한 한국 생활.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힘들지 않을 것 같다. 벌써 열흘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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