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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24. 2021

관심과 진심어린 사과

학교폭력 이야기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하는 뉴스가 있다면 바로 학교폭력(이하 학폭) 관련 얘기일 것이다. TV에서는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그들이 과거에는 폭력을 일삼고 남을 괴롭힌 가해자란 사실에 우리는 분노했다. 그들이 과연 남의 인생을 짓밟고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자격이 있는지 우리는 의심했다. 그들은 유명인이기에 공개적으로 비판받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지만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과거 학폭 사실이 숨기고 살아가는 가해자도 많다. 오랜 세월 그들이 준 아픔을 남모르게 간직해온 피해자는 더 많을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뭉개진 마음의 상처는 깊어 쉽게 잊히지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정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학교다.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이 곳에서의 폭력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가해자들은 주로 선생님의 눈을 피해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주변 아이들은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보다 더 무서운 건 가해자의 보복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4월, 9월)에 걸쳐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서를 보면 전체 피해 응답률은 0.9% 로 나타났다. 학급별로는 초 1.8%, 중 0.5%, 고 0.2%로 나왔다. 의외로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걸 알 수 있다.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33.6%), 집단 따돌림(26.0%), 사이버폭력(12.3%), 신체폭력(7.0%), 스토킹(6.7%) 순으로 나타났다. 그중 사이버폭력은 작년도에 비해 3.4%나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더욱 은밀하여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발견하기 쉽지 않다. 하교 시간 이후에도, 가해자 얼굴을 보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할 수 있기에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는 성적인 문제로 까지 번질 소지가 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6학년 선생님들 모두 모이세요” 당시 6학년 부장 선생님은 회의가 있을 때 큰 소리로 선생님들을 부르시곤 했다.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컸다. 부장 선생님 목소리는 꽉 막힌 복도에서 증폭되어 가장 끝에 위치한 교실까지도 안전하게 전달됐다. 미처 메신저를 확인하지 못하신 선생님들도 이 소리가 들리면 한걸음에 달려왔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학년에서 큰일이 일어났어요” 부장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매일 사건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날의 연구실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몇몇 남자아이가 한 여학생에게 문제 될 소지가 있는 문자를 보냈어요” 라며 부장님께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문자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차마 6학년 학생이 보냈다기 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어느 모텔로 와라. 너랑 놀고 싶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6학년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이 사건의 심각성을 바로 느꼈다. 

“이 문제를 교장, 교감선생님과 의논할 거예요. 혹시 성적인 일과 관련하여 혹은 다른 언어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학생이 있는지 반 전수조사를 해주세요.” 

“이건 성희롱 수준이에요.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피해학생을 위해서라도 미온적으로 나가면 안 돼요. 학교에서는 분명히 미온적으로 나갈 거예요.” 

한 선생님이 분노에 찬 말로 이어나갔다.

“그래도 교장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는 게 먼저예요.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지 상의해보도록 합시다.”


  이날 회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각 반에서는 언어폭력, 성폭력, 성희롱, 신체 폭력 등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지 전수조사가 이루어졌다. 심각할 정도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 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이들은 조금씩 성에 관심을 보였고 몇몇 남자아이들은 야동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야동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 남들이 하지 않는 걸 먼저 접한 것에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성인지가 길러진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다음날 교감 선생님과 6학년 선생님과의 회의가 열렸다. 학교에서는 미온적으로 대처할 거라는 한 선생님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교장, 교감 선생님은 외부로 이런 사실이 새어나가는 걸 꺼려하셨고 내부적인 상담과 교육을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자고 하셨다. 결국 가해학생 부모님과는 상담을, 6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폭력 예방 교육을, 전체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아이들 성교육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가해학생이 피해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지 여부는 모른다. 분명한 건 피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상담이나 도움을 주는 제도는 학교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해 학생 부모만을 위한 학부모 교육을 합시다’란 선생님의 의견도 무시당했다. 그들에게 또 다른 낙인효과가 될 수 있다며 가해학생이 누군지 드러나는 교육은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학부모 교육에 가해 학생 부모님은 한 분도 오지 않았다.


  가해 학생들은 다양한 변명을 한다. 우선 ‘장난으로 그랬어’, ‘친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네가 먼저 맞을 짓을 했잖아’라고 말하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다. 학폭의 기준과 사과의 기준은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피해 학생이 ‘내가 폭력 당했다’라고 느끼면 학폭이고 ‘내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라고 하면 진정 어린 사과를 한 게 아니다. 


  또 다른 변명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학폭을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경미한 학교 폭력은 학교 측에서도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기를 꺼려한다. 담임 선생님 선에서 당사자간의 대화와 상담 통해 해결을 우선 시도한다. 경미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이건 학폭이 맞다. 지속성의 여부는 학폭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적극적인 진술로 응해야 한다.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떨고 있는 피해자가 이를 극복하고 용기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은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 폭력에 대한 내용이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다. 학기말이 되면 ‘되도록 학생의 장점을 써주세요. 부정적인 얘기보다는 발전 가능성 쓰세요’라며 교육부 또는 교장선생님의 지침이 내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선생님은 학생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좋은 면을 써줘 일 년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생활기록부만 보고 그 당시 학생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학교폭력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 아니다. 그 철없는 행동에 의해 누군가는 평생을 아파할 수 있다.  학폭은 네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네 자식 일이 아닌 내 자식 일이 될 수 있다. 혹시 내 주변에 누구 때문에 힘들거나 아파하는 친구는 없는지, 내 자식이 요즘 어떤 것에  관심 있고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기울여도 학교 폭력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뿐 아니라 피해학생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상처 받은 마음과 정신적 충격을 헤아리는데 치중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가해 학생의 태도다. 사과 한 마디에 모든 피해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피해 학생의 마음을 가장 잘 녹여줄 수 있는 건 가해자의 뉘우치는 행동과 진심 어린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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