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사투의 현장
음식을 먹을 때마다 찌릿찌릿, 쩌릿쩌릿. 혀가 그곳을 스칠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이 느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이 느낌, 인생의 행복 중 하나인 먹는 즐거움을 앗아가는 이 느낌을 또 만나고 말았다. ‘저절로 낫겠지’란 생각으로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녀석은 쉽게 사그라질 녀석이 아니란 것을. 혀로 상처 난 부위를 건드려 보았다. 며칠 전보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상처의 윤곽이 더 또렷해지고 커졌다. 거울을 보며 아래쪽 입술을 뒤집어 보니 내 오른쪽 팔에 난 점같이 지름 3mm 정도의 흰색 상처 2개가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크다. 사이좋게 위아래로 자리 잡은 상처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커지면 눈사람 모양처럼 하나로 합쳐질 것만 같았다. 내가 찌릿함을 넘어 뼛속까지 쩌릿함을 느낀 이유가 이해됐다.
구내염이 날 때면 항상 고민에 빠진다. 그냥 스스로 낫게 내버려 둘까, 아니면 약을 바를까.
내 경험상 구내염은 약을 바르면 3~4일, 약을 바르지 않으면 7~10일 정도면 치유가 된다. 두 배나 단축되는 치유 시간. 안 바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바를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는 이 약을 바르면 입 전체가 마비되는 고통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약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엄마로부터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항상 구내염을 달고 사셨다. 하나만 나도 입안이 쓰라린데 보통 2~3개씩 같이 나서 엄마는 무척 괴로워했다. 겨우 다 나으면 또 다른 부위에 나고…….
“엄마는 왜 이런 게 자주 나나 몰라. 한 번 나면 얼마나 아픈지. 너희들은 이런 거 달고 살지 마.”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음식 먹다가 입안을 실수로 깨문 거 아냐?”
난 엄마의 입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순히 음식을 씹다 깨물어서 난 거라며 오히려 엄마의 부주의함을 탓했다.
“아니야. 안 깨물었는데도 자꾸 나.”
내가 커서 실제로 구내염이 나서야 엄마가 이해됐다. 이 조그마한 상처가 얼마나 신경 쓰이는 존재인지, 얼마나 쓰라린 아픔을 주는지, 왜 그리 엄마가 고통스러워하셨는지, 실수로 깨물지 않아도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나는 상처라는 것을. 그 시절 엄마의 삶이 스트레스로 물들어 있었단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래도 후 모시기 약보다 이 약이 최고야. 바를 때 좀 아픈 거만 견디면 빨리 낫더라."
이 약은 구내염이 자주 나는 엄마의 필수템이 되었다. 그 약은 바로 ‘알보칠’. 조그마한 갈색 유리병에 담긴약. 와 ~이 약병 귀엽다. 이 약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귀엽고 조그맣고 절대 고통을 줄 거 같지 않은 비주얼. 하지만 상처에 닿는 순간 구내염보다 더 쓰라진 고통을 안겨주는 약. 외유내강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약. 고통을 견뎌내야만 인생의 행복도 일찍 찾아온다는 명언을 넌지시 던져주는 약. 이 약은 내게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결혼 후에도 우리 집에는 항상 알보칠이 준비되어 있다. 이번에 상처를 보니 이 약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다. 언제 봐도 귀여운 비주얼의 갈색 약병을 열었다. 순간 피 냄새 같이 기분 나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대형 병원 입원실 입구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 모든 균을 다 말살해버리겠다는 그 의지의 냄새. 흰색 면봉으로 콕콕 찍으니 금세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꼭 피 같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면봉을 상처 난 부위에 댔다. 톡. 톡. 톡. 최대한 부드러운 손길로. 부드러운 손길이 무색하게 순간 머릿속까지 찌릿찌릿한 고통이 전달됐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입안이 얼얼하다. 고통 이외의 나머지 감각이 마비된 것 같다. 입 속에는 계속 침이 고였고 나도 모르게 자꾸 ‘쓰~쓰~’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약을 바르고 있으니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 많이 아파?"
"응. 많이 아파. 우리 아기들은 이런 거 나지 말고 자라."
엄마가 나한테 해 준말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해줬다. 비록 나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 약의 고통만큼은 아이들이 느끼고 살지 않았으면 싶었다. 십분 후 내 혀에 흐물거리는 물체가 느껴졌다. 무언가 봤더니 뱀이 허물을 벗듯 내 입안을 보호하고 있던 껍질이 벗겨졌다. 껍질을 벗겨내니 상처 난 부위는 불투명한 흰 빛깔로 변해 있었고 내 입술은 누구한테 한대 얻어맞은 듯 부풀어 있었다. 이 약은 내 피부 속에 들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어떤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세균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3일의 힘겨운 사투 후 구내염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번에도 이 약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역시 바르길 잘했어. 그런데 이제 그 사투의 현장은 그만 보고 싶다.
**이미지: 다케다 알보칠 구내염 치료제 이미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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