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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y 26. 2021

14년만에 들려온소식

안녕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베란다 없이 바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큰 창문에는 어느새 비가 물줄기 자국을 내며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공기가 안 좋은 하노이에서 비 소식은 오히려 반갑다. 하노이 도시뿐 아니라 내 마음까지 깨끗이 씻겨 주고 나무와 꽃들에게는 생명력을 준다.


비를 흠뻑 맞은 덕분일까? 집 주변에 있는 망고나무에는 망고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푸르름을 한껏 머금은 초록색 망고. 아직 제 역할을 하려면 멀었지만 덜 익은 초록 빛깔의 망고는 어린아이처럼 생기 있어 보인다. 적당히 통통한 주름 없이 매끈한 망고를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싱그러워진다. 한 알의 망고 씨에서 여러 망고가 탄생하고 또 그 망고가 자라  생명을 자라게 하고. 누가 일부러  나무를 뽑지 않은 이상 매년 이 시기에 망고나무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것이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따라 망고나무가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혹시 인사실에 있는 A씨 알아?”


남편과 나는 같은 직장에서 만난 사이로 아는 사람이 겹친다. 내가 퇴사한 후에는 나와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의 소식을 종종 남편을 통해 듣곤 했다. 그날도 남편의 입에서 오랜만에 A언니의 이름을 들었다. 내가 2007년에 5월쯤에 회사를 그만뒀으니 딱 14년 만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아 따로 연락하고 지내지 않은 언니였다. 답장을 하기 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남편이 그 언니 이름을 갑자기 꺼냈을까? 예전의 경험으로 비추어봐선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일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언니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겨 사내 게시판에 떴나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남편에게 답장했다.


“응. 알아. 예전에 같이 일했어.”

곧이어 남편의 짧은 한 줄이 이어졌다.


“본인 상이래”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며 가슴에 무거운 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내 얼굴은 굳어졌다. 대체 그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42세의 젊은 나이에 그리 됐을까. 젊은 나이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경우를 다 생각해봤다. 혹시 자살일까, 자살이라면 왜?, 아님 원래 몸이 좀 안 좋았나? 그렇다면 회사도 계속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사고라도 당한 걸까? 그렇다면 무슨 사고를 당했길래......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예전 기억 속에서 언니는 여전히 웃고 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니 믿기지 않았다.

“혹시 왜 그렇게 된 줄 알아?”


남편의 다음 말에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출산하다 그랬나 봐.”

“뭐라고? 애 낳다가 그랬다고? 어떻게 그래? 말도 안 돼.”


뉴스에서만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세상 최고의 기쁜 날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슬픈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10년간 연간 49.8명의 산모가 아이를 낳다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내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며 관심 없었다. 하지만 지금 관심 없던 일이 내가 아는 사람에게 일어났다.


새 탄생을 앞두고 들떴을 언니와 그 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언니는 나를 중심으로 살다 엄마가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고민했을 것이다. 아기를 위해 아기자기한 아기 용품을 준비하며 설레었을 것이다. 출산 후 육아 휴직을 하고 아이와 행복하게 지낼 일을 상상하며 기뻐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에게 이런 사고가 발생할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출근 마지막 날 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니 잘 있어. ''

“그래 너도 잘 지내고. 혹시 부장님께 실업급여 탈 수 있는지 여쭤볼게.”

나같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지급될 수 없다는 것을 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백수 생활로 접어드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 언니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말이라도 고마워 언니. 나중에 회사에 놀러 올게.”

언젠가 어디에서쯤 만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그게 언니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고통 없이 지내고 있을 언니에게 14년 만에 인사를 건네고 싶다.

‘언니, 거기선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꼭 행복해. 안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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