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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n 15. 2021

단순히 걱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랍니다

며칠 전 아이들에게 걱정거리를 달고 사는 곰 아저씨 이야기를 읽어준 적이 있다. 곰 아저씨는 친구 집에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선물은 뭘 가지고 갈까부터 고민하고 혹시 가는 길에 비가 올까 봐 비옷을 입고, 흔들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질까 튜브를 몸에 끼고 길을 나선다. 걱정거리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곰 아저씨의 머리 위에는 갈색 똥 같은 걱정거리들이 머리 위에 잔뜩 얹어져 있다. 아이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끼득끼득 웃으며 재미있어했고 결국 ‘미리 걱정하며 살 필요 없다’라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도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곰 아저씨처럼 되지 말고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미리 걱정 안 해도 돼. 한 번 해보는 거야!”라고 교과서적인 덕담을 건네고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문득 생각해 봤다. 그럼 나는 걱정에 관해 어떤 사람인가? 걱정을 안 하는 편인가 아니면 곰 아저씨처럼 걱정을 달고 사는 편인가? 둘 중에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되지 말라는 그 곰 아저씨 성향과 비슷한 것 같다. ‘혹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 하지?’ 나는 미리 걱정해서 대비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이 단순히 쓸모없는 걱정으로 끝날지라도. 하노이에 와서는 크게 다치는 경우를 생각해 봤다. 한국 병원처럼 의료시설이 좋지 않다 보니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디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지, 통역이 가능한 병원은 어디인지, 응급실이 있는 병원은 어디인지를 미리 알아봤다. 막상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받을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나만의 조치인 셈이다. 마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방지해주는 에어백처럼.


하지만 아무리 걱정하고 대비를 해도 사람 몸속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라는 것을 엄마와 통화 후에 느꼈다. 엄마에게 들은 소식은 나를 보호한 에어백 밖에서 날아온 펀치와도 같았다. 그날따라 유독 엄마 목소리가 낮게 깔린걸 눈치챈 나는,

“엄마 무슨 일 있어?”

“어쩌면 좋니…… 미선(가명)이 불쌍해서 어떻게.”

“왜 무슨 일이야?”

“미선이가 암이란다. 혈액암.”

“……”

고요하던 바다에 갑자기 쓰나미가 몰려올 듯 평온했던 내 마음도 갑작스러운 충격의 파편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갔다. 그 충격은 머릿속까지 강타해 순간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난 사실 엄마에게 둘째 이모부의 안부를 물으려 했다. 둘째 이모부가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사실 이모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모부는 나이가 드셨어도 술과 담배, 커피 등을 끼고 사셨고 지병도 있으셨던 80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선언니의 소식은 달랐다. 미선언니는 아프신 둘째 이모부의 딸이자 엄마의 조카이자 나의 사촌언니다. 나와 6살 차이로 지병도 없었고 건강했고 성격도 밝았던 언니였다. 언니는 지방에 살고 있어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를 통해 언니의 안부를 종종 전해 듣곤 했다. 생각해보니 약 7-8년 전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때도 밝은 표정으로 웃고 떠들었던 언니였는데 언젠가는 언니가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들려온 소식은 결혼 대신 암 소식이었다. 사촌언니와 혈액암.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가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빨리 둘 사이의 간격을 벌려놓고 싶었다. 요즘 의학기술이 발달해 암도 치료가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암이라고 다 결과가 안 좋은 건 아니라고 애써 내 마음을 다독이며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 요즘 암도 고칠 수 있잖아. 많이 퍼진 건 아니지?”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엄마 제발 많이 전이된 건 아니라고 말해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이미 목에까지 전이가 됐나 봐. 상황이 안 좋은 거 같아. 미선이 불쌍해서 어떻게. 결혼도 못하고.”

“혹시 어디서 진단받은 거야? 믿을 만한 병원에서 받은 거야?”

난 이제 그 진단을 내린 병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인지 아니면 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았는지 혹사라도 오진은 아닌지.

“동네 병원에서 진단받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다시 진료받았나 봐.''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암은 대체 왜 생기지? 왜 일찍 발견이 안 되는 걸까? 미리 암에 걸리지 않게 예방할 수는 없는 걸까? 혈액암이 대체 어떤 병이며 왜 걸리는 걸까? 얼마 전 어떤 의사 출신 기자께서 ‘암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으며 암도 운이다. 금주, 절주, 운동 등 아무리 노력해도 암의 3분의 2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랜덤으로 생긴다’라고 하셨다. 암도 운이라니! 운이 나쁘면 걸리는 게 암이라니. 사촌언니의 몸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도 랜덤으로 생긴 걸 수 있다니 뭔가 허무함이 몰려왔다.


‘혈액암’이란 병명은 방송인 허지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작년에 암투병자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그가 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암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허지웅의 모습이었다. 암 자체보다도 암을 이겨내기 위해 하는 항암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어 그냥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그의 고백은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내 귓가에 맴돌았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그를 극복하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허지웅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암환자들이 이 시간에도 고통을 견뎌내고 있을지 상상해봤다.


허지웅의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상상했던 것처럼 사촌 언니가 혈액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순간 내가 허공에 대고 헛발질을 해대는 인간처럼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맞추려 해도 맞출 수 없는, 발차기를 한들 절대 정조준할 수 없는 그 심정을 난 떠올려보려 노력했던 것이다. 실제 그 상황을 마주한 당사자가 느낀 감정의 세발의 피도 안 되는 한없이 질 낮은 상상을 노력을 통해 끄집어 내려했다니 순간 내가 부끄러워져 이내 생각을 멈췄다.


5월 초에 한 기사를 읽었다. <보아 오빠 권순욱 말기암 고백…> 광고, 뮤직비디오 감독인 그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현재 복막암 4기임을 알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회환 섞인 고백이었다. 보아가 한창 일본에서 활동할 때 뮤직비디오 감독인 자신의 오빠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그 프로그램 속에서 권순옥 씨는 건강한 모습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유능한 감독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려온 그에 관한 소식은 복막암 말기. 지금 그는 이런 얘기를 한다. “예후가 좋지 않은지 현재 기대여명을 2~3개월 정도로 병원에서 이야기한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왜 나에게 이런 꿈에서나 볼법한 일이 나타난 건지 믿을 수 없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늘 현실”   


꿈에서나 볼법한 일을 마주한 미선언니와 권순옥 감독. 이들에게 이 두려운 현실이 어서 빨리 끝나고 ‘그땐 그랬지’라고 이야기할 날이 오길, 걱정이 단순히 걱정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 더불어 내가 암에 걸리는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상상한들 실제 마주할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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