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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17. 2021

오늘도 현실 육아를 합니다

행동하고 후회하고 다짐하고

“엄마 나 오늘 발레복 입고 갈래.”

“오늘 소풍날인데 어떻게 발레복을 입고가? 발레복은 집에서 입자.”

“싫어. 나 입고 갈 거야.”

“오늘은 안돼. 소풍 갈 때는 편한 옷 입고 가야지. 이 옷은 화장실 갈 때도 불편해. 유치원 갔다 와서 집에서 입자. 잘 때 입고 자도 돼. 이제 곧 유치원 버스와. 어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자.”

“싫어. 싫어 입고 갈 거야.”


10분 후 유치원 버스가 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를 받으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어서 준비를 해서 미리 나가 있어야 선생님도 미리 차에 미리 타고 있는 친구들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소풍 가는 날 발레복을 입고 간다고 떼를 쓴다. 이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행동이다. 덩달아 내 감정의 한계치도 폭발하기 일부 직전이다.


“사탕 먹으면서 갈래? 오늘은 발레복은 진짜 안돼. 빨리 다른 옷으로 갈아입자. 곧 차 와.”

“싫어. 사탕 안 먹어.”


난 최후의 수단인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지만 이마저도 안 통하는 날이 있다. 결국 마구 흔든 사이다의 페트병 뚜껑을 열 때처럼 내 감정도 터지고 말았다. 

“아니면 오늘 소풍 가지 마! 엄마가 몇 번을 말해. 안된다고 ”

“싫어. 갈 거야~”


이미 세수를 마친 아이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다. 1호는 옆에서 엄마 눈치를 보며 동생을 달랜다. 오늘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절대 화내지 않기로 했는데... 유치원 가기 전에는 기분 좋게 보내고 싶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실패다. 아이를 결국 차에 태워 보내고 고요한 집에 돌아온 후에야 내 마음도 둘러본다. 그리고 후회한다. 화는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 늦더라도 잘 달래서 보낼걸.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다짐하는 ‘오늘은 화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 


아침을 무사히 보내 ‘오늘 하루는 수월하네’라고 생각한 날에는 꼭 자기 전에 일이 벌어진다.


“나도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평소에 아빠 옆에서 잘 자던 1호가 내 옆자리에서 자고 싶어 한다.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은 1호와 엄마 옆자리는 무조건 자기만 차지하려는 2호와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보통 우리 집은 안방 높은 침대에는 아빠와 1호, 옆에 낮은 매트에서는 나와 2호가 같이 잔다.


 “그럼 우리 침대에서 4명 다 같이 자자. 아빠, 1호, 2호, 엄마. 이 순서로 자는 건 어때?” 나도 나름의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럼 내가 엄마 옆에서 못 자잖아!”

1호가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외친다. 그럼 나는 또 다른 제안을 한다.

“그럼 아빠, 1호, 엄마, 2호. 이렇게 자면 되겠네. 그럼 엄마가 1호와 2호 사이잖아.” 

난 겉으로는 최대한 기분 좋게 타이르고 있었지만 물이 끓기 시작 전 보글보글 대는 것처럼 내 마음도 아슬아슬했다.

“싫어. 나 끝에서 자면 무서워.” 

이제는 끝으로 자리가 배정된 2호는 무섭다며 울기 시작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다짐하며 화를 누르고 얘기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엄마, 2호, 1호, 아빠. 1호와 2호는 엄마, 아빠 가운데서 자니 안 무섭겠다.”

“그럼 내가 엄마 옆에서 못 자잖아!”

이번에는 엄마 옆자리를 빼앗긴 1호가 억울해하며 울기 시작했다. 결국 1호, 2호는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마음속 온도도 100도 씨가 되어 끓어 넘쳤다. 그리고 던진 한마디.

“그럼 자지 마!!!!” 

결국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약 10년 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이 프로는 당시 시청률 10%가 넘는 프로그램으로 매 회 화제가 됐고 엄마들 사이에서도 오은영 박사님은 스타로 등극했다. 당시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부모가 얼마나 육아를 못하면 아이가 저럴까’, ‘아이가 저렇게 행동하는 건 다 부모 잘못이야’, ‘난 절대 저렇게 아이를 키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난 오늘도 현실 육아를 경험하고서야 프로그램 속 이야기들이 남일이 아님을 느끼며 고개 숙인다. 혹시 프로그램 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닐까? 그나마 방송국에 의뢰한 부모는 문제 해결 의지가 있고 육아를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훌륭한 부모 일지도 모른다. 


  육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길을 더듬거리며 집을 찾아가는 여정 같다. 중간에 넘어지기도 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선 다음 이 길로 가지 말아야지 후회하지만  곧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선 후 다짐한다. '이제는 제대로 길을 찾아가기라'하고. 행동하고 후회하고 다짐하는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부모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심스레 한 발짝 내딛어 결국 자기 집을 찾아간다. 오늘도 난 상처 받고 후회하고 다짐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내 집을 더듬더듬 찾아는 중이다. 육아란 원래부터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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