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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16. 2021

미움받을 용기

착한 아이 컴플렉스

  ‘친구와 싸우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학창시절에 나는 그야말로 소위 말하는 ‘착한 아이’였다. 바르게 말하면 선생님, 친구들에게 착해 보이려고 애쓰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께서 <착한 어린이상>을 한 학기에 한 번씩 시상하셨다. 반 아이들로부터 착한 어린이로 추천 받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내 친한 친구들로부터였다. 친구들이 나를 추천한 이유는 이랬다. “미연이는 자기 할 일을 열심히 잘합니다.”, “미연이는 말 수가 적어요.”, “다른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냅니다”, “청소를 열심히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얼토 당토 않은 이유를 대고 우긴 꼴이다. 친구들 덕분에 나는 <착한 어린이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이유를 종합해 보면 내가 친구들에게 어떤 아이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자기할 일 열심히 하고,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청소를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사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날 미워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나랑 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야 학교에서 원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좋은 평판을 받아야겠다’란 생각은 더욱 심해졌다. 회사에는 내가 징징댄다고 받아줄 수 있는 엄마도 친구도 없다. 오로지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직장 상사와 동료만이 존재한다. 인간관계에서나 일에 있어서나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 일했다. 직장 상사가 하는 말에 ‘이렇게 하는 게 맞나?’란 의심조차 하지 않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고 나와 생각이 달라도 내 의견을 첨부하지 않았다. 지시가 떨어지면 하기 바빴고 그렇게 나는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료와도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기 싫어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소위 다른 직원들이 싫어 해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는 동료가 있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 말도 걸어주었다. 그 결과 나에겐 적이 없었다. 회사 동료들과는 고슴도치 다루듯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게 안정거리를 두면서 회사생활을 했다.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상대방에게 큰 소리 치는 대신 마음속에 묻어둔 후 화장실로 달려가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해야 직장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판이 날 것 같았다. 정말 나는 상사로부터 ‘일 잘한다’란 평가를 받았고 승진도 빨리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엔 공허함이 가득했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회 부속품으로 전락된 기분이 들었다.


  교사가 되어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1월 말이나 2월 초가 되면 새학년과 업무를 정한다. 희망 학년과 업무를 교감선생님께 적어내지만 그대로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업무 분장표가 발표되는 날은 ‘누가 몇 학년과 어떤 업무를 맡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마치 내년에 누구랑 같은 반이고 담임 선생님은 누군지 궁금해 하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내가 원하는 업무와 학년으로 배정이 안되면 난 그냥 받아들였다. 마음에 안 들다 거나 못하겠다는 티를 내면 교장,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능력 없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았다. ‘교감선생님이 내 능력을 보고 알아서 잘 배정해주셨겠지’라며 내 욕구보다 교감선생님의 생각을 더 옹호했다. 학년을 바꿔달라고 교무실로 찾아가는 선생님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 하지?’라고 생각했다. 원치 않더라도 도저히 못 할 것 같아도 불평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난 내 자신의 욕구보다 모두가 원하는 쪽으로 그렇게 세팅되어 갔다.


  나이 40이 되어서야 이게 정상이 아님을 알았다. 혹시 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나'라고 의심이 들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삼당코칭학 권수영 교수님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이렇게 말하셨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진짜 내 모습이 들어 있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란 상대방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거나, 사랑 받고 싶을  나타나는 관계중심적인 행동을 말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종의 자기주장 결핍증이다.

증상은

첫째, 착하게 굴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거라고 생각하여 타인의 요구에 순응한다.

둘째, 타인의 판단, 관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다.

셋째, 타인과 갈등이 생긴 상황에서도 타인의 요구에 순응해버린다.

넷째, 자신의 욕구가 억눌려 있어서 위축감, 무기력증, 우울증, 불면증, 신경증 등에 시달린다.

다섯째, 자아를 잃고 소극적인 삶을 살거나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을  위험이 크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 권수영 교수>


그 동안 부모님과 선생님이 착하게 살라고 하니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움 받을까 봐 착하게 살았다. 갈등이 생겨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면 상대방이 날 미워할까 의견을 얘기하지 않았다. 힘들어도 내 역할을 참아가며 해냈고 힘든 감정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나만 불평하지 않으면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 질 것 같았다. 미운 털 박히고 싶지 않았고 튀고 싶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왔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없이 말이다.


기시미이치로가 쓴 ≪미움 받을 용기≫ 일부분이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 부족한 거지. 행복해 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 간에 달라질 걸세.

<미움받을 용기 by 기시미이치로>


7살 아들에게 한 말을 떠올려봤다. “엄마 말 왜 안 들어?”,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항상 동생 잘 챙겨”, “7살짜리가 어쩜 이렇게 의젓할까, 형아 다 됐네”

아들의 평소 모습을 떠오려 봤다. 아침 7시쯤 스스로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릴 때 항상 동생 손을 꼭 잡고 기다린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애가 동생에게 다가가면 자기가 앞을 가로 막아 동생을 보호한다. 동생이 울면서 달라고 하면 속상하지만 준다. 친구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한다. 엄마, 아빠한테 조금이라도 혼나면 속상해하며 운다. 괴롭히는 친구가 있어도 선생님께 말하지 않는다. 선생님께서 “How are you today?”라고 물어 보면 항상 “I’m happy.”라고 대답한다. 오늘 기분이 진짜 별로인데도 말이다. 그 동안 ‘다른 아이보다 의젓하고 스스로 하는 아이라 걱정 없다’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들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생각대로 해도 된다고 남에게 욕먹는 것도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지금부터 나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미움 받을 용기' 심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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