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22. 2021

물 트라우마 극복하기

물에 대한 아픈 기억

4월이 되면 하노이는 여름에 성큼 다가간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 때도 있지만 춥다기 보단 기분 좋은 시원한 느낌이 드는 날씨가 이어진다.


엄마 나 지금 수영하고 싶어.”


실외 수영장 옆을 지나가던 첫째 아들이 말했다. 이날은 오랜만에 실외 수영장이 오픈한 날이었다. 벌써 몇몇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미끄럼틀 같은 놀이 기구는 없지만 넓적하니 여느 물놀이장 못지않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우리 아파트의 자랑거리다. 그 모습을 보고 참새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치듯 아이들은 수영장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실내 수영장은 일 년 내내 문을 열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몇 달간 문을 닫았다) 실외 수영장은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문을 닫는다. 오랜만에 개장한 실외 수영장에 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결국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실외 수영장과 실내 수영장 2곳이 있다. 한인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에는 거의 수영장이 있어 수영을 즐기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덩달아 우리 가족도 하노이에 온 후로 수영을 즐기고 있다. 아빠를 제외하고 수영을 못하는 나와 아이들은  수영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여기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원래 초보들이 그렇듯 다양한 수영 장비를 구매했다. 수경, 수모뿐 아니라 튜브, 구명조끼, 팔 튜브, 부력 받침대 등 우리 집에는 수영에 필요한 기본 장비들이 한아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수영하는 횟수가 늘수록 물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수영실력도 나날이 발전했다. 물에 뜨지 못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튜브 없이 발차기를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손동작과 팔 동작이 아직 부자연스러운 수준이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아이들은 물놀이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었다.


내가 수영을 처음 접했을 때는 20대 시절 집 근처에 있는 문화센터에서였다. 수영 강습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 후 달려갔다. 한 달 동안 연습 후 겨우 물에 뜨는 정도에서 도중에 포기했다. 퇴근 후 수영장에 가서 한 시간 수업을 듣는 일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수영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결국 나의 쉬고 싶다는 본능에 무릎 끓고 말았다. 두 번째로는 교대에 입학 후 수영 수업을 통해서다. 몇 번의 수영 수업 후 친구들은 나날이 실력이 발전돼 왕복 코스를 완주하는 수준이 되었다. 나 포함 2-3명 친구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구석진 곳에 가서 숨 쉬는 연습, 물에 뜨는 연습을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나는 결국 수영 수업 학점은 낙제 점수를 받았다. 


하노이에서 세 번째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지' 라며 한 마리의 인어가 되어 자유롭게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남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쉬워 보였고 내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평일에는 혼자 수영장에 가서 수영 연습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들과는 달리 내 수영 실력은 당최 늘질 않았다.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고 ‘물에 빠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물이란 무서운 것. 나를 언제든지 잡아 삼켜버릴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어릴 적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난 아직도 그날 있었던 일을 1분 1초 단위로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내 생이 끝날 수도 있었던 그 날의 일을. 내가 8살이나 9살 때쯤 무더위가 한 창인 7월 어느 날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무주 구천동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 갔다. 나는 오랜만의 나들이로 들떠 잠도 설쳤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겐 계곡에서 신나게 놀 장밋빛 미래가 있었으니깐. 숙소에 도착한 후 외할머니와 엄마, 이모들이 먹거리들을 냉장고에 채우고 방에 짐을 풀고 있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계곡에서 놀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수박 한 통을 들고 계곡으로 나갔다. 찌는 듯한 날씨였지만 물을 보니 시원했다. 하늘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나무는 푸르른 기운을 뿜어대며 좋은 에너지를 내게 주었다. 언니와 나는 앉기에 적당한 평평한 바위를 골라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와~ 시원하다. 우리는 기분 좋은 시원함에 마주 보고 까르르 웃었다. 우리가 마치 자석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우린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쪽으로 흐르는 다른 계곡물과는 달리 물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빙글빙글 빠르게 돌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물이 도는 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내 정신이 동그라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 물 위에는 빗 하나가 둥둥 떠 물살에 따라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냥 저 빗을 잡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저 빗을 잡아야겠단 생각뿐이었다. 내가 빗을 잡기 위해 손을 앞으로 뻗는 순간 내 정신과 함께 육체는 소용돌이 속으로 재빨리 빨려 들어갔다. 이때는 죽음이 뭔지 몰랐다. 내가 죽을 수 있단 생각보단 그냥 ‘이곳은 깊고 어둡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속에는 한줄기 빛만 번지고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잡으려던 빗조차도. 점점 내 몸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몸이 ‘부웅’하고 빛이 새어 들어온 곳을 향해 떠올랐다.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당겨 빛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물 밖으로 꺼내졌고 곧 어떤 아저씨에게 건네 졌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계곡에서의 모습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이었다. 내 옆에는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미연아 이제 괜찮아?”

엄마가 물었다. 신기하게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어쩌다가 빠진 거야?”

빗을 잡으려다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어.”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구해준 사람은 우리 막내 이모였다. 이모가 나를 끌어올렸고 이를 보고 계신 어떤 아저씨께서 나를 받아주셔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모와 그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다. 

 


놀이의 대상이었던 물이 그 사건 후 30년 동안 내겐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나를 숨 쉴 수 없게 옥죄게 만드는 물의 위상을 난 일찍이 알아버렸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나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조금만 내 시야에서 벗어나면 불안하고 깊은 곳은 튜브 없이는 가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이 숨 참기 놀이한다고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많은 바운더리를 만들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반면 베트남 부모들은 수영장에서 그야말로 날뛰는 망아지처럼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물에 일부러 빠뜨려 물 밖으로 나오는 연습을 시키고 깊은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호흡법을 연습시킨다. 그래서 그럴까? 그들은 훨씬 자유로워 보이고 수영에도 능숙해 보였다. 


 난 오늘도 '두려움을 조금 극복하고 수영에 도전해보자'란 생각과 '수영 잘하면 뭐해. 옛날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건 싫어.' 란 두 생각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고 그 기회를 그냥 흘러 보내면 후회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계속해보자.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그날 까지.

 

이전 07화 결국 단발머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