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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y 16. 2021

기약 있는 이별

언젠가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그런 날이 있다. 빨리 오길 바라면서도 막상 다가오면 섭섭하고 서운하고 슬픈 그런 날. 이 날은 매년 1월이 되면 찾아오는 반 아이들과 이별해야 하는 종업식 날이다. 매년 겪는 이별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과의 이별 앞에서 나는 어른도 선생님도 아닌 그냥 감정에 충실한 한 명의 나약한 사람이 된다.


그동안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다양한 이별을 마주했다. 대부분은 피상적인 관계로 이별 앞에서 그들과의 연결 끈은 속절없이 끊어진다. 한때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인생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만남 그 이상이다. 우리는 일 년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교사는 학생의 감정을 하나하나 살피고 어루만지며 그들의 미래까지 함께 고민한다. 단순히 공부를 잘하도록 격려하는 사람을 넘어 부모 다음으로 학생의 지지대가 되고 디딤돌이 된다. 학생들도 교사를 믿고 그들의 일상과 고민을 공유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관계는 어떤 외부 힘으로도 끊어질 수 없이 단단하게 묶인다. 부모 자식 간의 정 못지않은 끈끈함이 우리 사이에 생긴 거다. 그런 연결 끈을 놓아주어야 하는 날이 바로 종업식날이다.  


항상 종업식날 아침이 되면 결심한다. 괜히 눈물 콧물 빼며 슬프게 이별하지 말고 한걸음 성장을 위한 이별이라 생각하고 쿨해지자고. 하지만 내 결심은 아이들 앞에서 금세 무너진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전 내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지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내 입은 무거워 다음 말을 이어가기 힘들어진다. ‘마지막’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아도 교실의 공기는 이미 마지막이라 말하고 있었다.


“얘들아~ 선생님은 너희들을 만나서 일 년 동안 정말 행복했어.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선생님은 진심으로 너희들을 응원할 거야. 선생님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힘든 일이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줘. 다들 선생님이랑 마지막으로 포옹 한 번씩 할까?”


행복과 응원이란 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하고 어느 때 보다 힘껏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나는 슬픔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그들을 눈에 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제는 매일 볼 수 없기에 안부를 쉽게 건넬 수도 없기에.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뿐이다. 애써 내 감정을 잘 추슬렀다고 생각할 찰나 몇몇의 학생이 ‘선생님~’하고 부르며 다시 달려왔다. 내 눈물샘은 여기서 또 한 번 터졌다.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거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예요. 나중에 학교로 찾아올게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진정성이 의심될 까 봐 차마 내가 먼저 할 수 없는 이 말. 아이들과 연결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희미하게라도 이어가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그들은 종종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내게 건넨다. 기약 없는 약속이 지나 간 텅 빈 교실엔 우리의 추억이 한가득 쌓여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도 기억의 서랍장으로 옮긴 후에야 하나의 이별이 완성된다. 그리고 내 희망과는 달리  '기약없음'은 대부분 현실이 된다.


학교를 잠시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이런 기약 없는 이별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타지인 하노이에 와서도 기약 없는 이별은 계속되었다. 그것도 더 자주.


“저 이번 주 일요일에 한국 가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들 친구 엄마에게 문자를 받았다. 5월 중으로 한국에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날짜에 깜짝 놀랐다. 타지에 와서 모든 인간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주재원 가족에게 나와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그 관계는 항상 생각보다 이른 이별을 마주한다. 다른 아파트 이사로, 한국으로, 타국으로, 방향에 따라 수시로 움직이는 나침반 바늘처럼 몇 개월 사이 내 주변도 수시로 변한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나로서는 그 아들 친구 엄마는 내게 마음이 맞는 드문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랬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내가 느낀 아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너무 아쉬워요. 한국에 오면 연락해요. 꼭 다시 만나요.”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우리는 가족끼리 식사를 하며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제자들이 내게  건넸던 것처럼.


스승의 날이 지나가기 3시간 전 카톡이 울렸다. 하노이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학생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그러니깐 그 학생과 다시 연결의 끈이 생긴 건 2년 만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전 2019년 5학년 8반이었던 창민이예요.
오랜만에 문자 보내요. 먼저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저는 지금 00 축구단에 뽑혀서 행복하게 축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베트남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나요? 훗날 TV에 나오는 축구선수가 될게요. TV에서 만나요. 선생님도 파이팅!


훗날 TV 속에서 멋지게 축구하는 제자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나와 함께한 제자의 성장한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면 기분이 어떨까. 이별 속에서 미래의 약속은 별 의미 없다고 믿었던 나인데 오랜만에 나와 제자를 연결해준 문자 한 통이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우리가 또 언제 만나겠어'하는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닌 '그래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어'하는 기약 있는 이별을 꿈꾸자고. 나를 거쳐간 수많은 제자들과도 베트남에서 인연을 맺은 좋은 사람들과 그리고 앞으로 인연을 맺을 사람들과도 나는 기약 있는 이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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