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이 있다. 나도 한국에서는 잘 와 닿지 않은 감정이 하노이에 온 후에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바로 ‘애국심’. 애국심을 느끼려면 외국에 나와봐야 한다고 하던데 난 여기 와서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길거리에서 현대차를 보거나(실제로 흔하다), 거리에서 한국 간판을 볼 때, 쇼핑센터에서 한국 노래가 나오면 어찌나 반갑던지 내 안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순간 깨닫는다. 현지 마트에서 베트남인이 한국 제품을 살 때도 내가 그 기업의 주인이라도 된 양 뿌듯하다.
베트남과 한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인에게 우호적이다. 내가 그 느낌을 받은 장소는 바로 택시 안이다. 베트남은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아 오토바이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그렇다 보니 나와 같이 오토바이를 이용하지 않는 외국인들은 그랩(GRAB)이나 베(BE)를 주로 이용한다. 그랩이나 베는 동남아의 우버(Uber)라고 보면 된다. 휴대폰 어플을 통해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등록하면 근처에 있는 차가 픽업해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하노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랩을 타고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의 첫마디는 이거다.
“Hàn Quốc(한꿕:한국)?”
한국인인지 확인하는 말이다. ‘한꿕’은 베트남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다. 베트남인들도 종종 한국인을 Trung Quốc(중국인)과 헷갈려하기 때문에 내 국적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이 말은 알아들어야 했다. 딱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는지 내가 택시를 타면 바로 저렇게 물어보신다. 그럼 나는 “vâng(방:예)”이라는 베트남어 대신 “Yes”라고 대답한다. 이는 ‘나는 베트남어를 못 알아듣고 잘 못해요’라는 함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어를 못하는 기사님과는 거기서 대화가 끝나지만 이날 만난 기사님은 눈치도 빠르고 영어도 곧 잘 하셨다.
“I love Korea. I like Samsung.”
삼성은 베트남에서도 누구나 알만한 외국기업이고 삼성 제품도 현지에서는 고가이지만 인기가 많다. 이어서 자기 핸드폰을 보여주시더니
“My phone is Samsung.” 삼성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Thank you. I love Samsung too."라고 외치며 목적지에서 내렸다.
베트남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데는 박항서 감독님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현지에서 ‘베트남 축구의 영웅’, ‘쌀딩크’이란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2019년 12월에 열린 동남아시아(SEA) 남자 축구대회에서 베트남이 우승하면서 그의 인기는 거의 신드롬에 가까웠다. 경기가 끝나자 아파트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고 평소 조용하던 거리에는 부부젤라 소리가 허공을 가로질러 퍼져갔다. 길거리나 택시에서도 박항서 감독님의 광고 사진을 자주 볼 수 있고 그가 출연한 광고 제품의 매출이 몇 배나 뛰었다는 기사도 쏟아졌다.
내가 베트남에 간다고 했을 때도 ‘지금 박항서 감독 때문에 한국 이미지가 좋아져서 살기 좋을 거다’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 나도 내심 ‘혹시 베트남에 가면 뵐 수 있을까?’ 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곧 그 기대감은 현실이 되었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감독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2020년 6월 어느 날 다낭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고 있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조용히 속삭였다.
“옆에 박항서 감독님 계신다”
“정말? 어디?”
남편이 가리킨 쪽을 보니 정말 박항서 감독님이 계셨다. 화면에서 보아온 대로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모습이셨다.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이라 여러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니실 줄 알았는데 혼자 계셨다. 방해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 감독님께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사진 같이 찍어 주실 수 있나요?”
탑승 수속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니 감독님은 이리 오라며 흔쾌히 사진 촬영에 임해 주셨다. 베트남에 온지는 얼마나 됐고,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친근하게 물어봐 주시기도 했다. 베트남의 영웅을 우연한 장소에서 뵙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좋은 여행되세요.'' 란 말을 서로 나누며 반가운 만남을 끝맺었다. 다시 한번 내가 박항서 감독과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얼마 전 베트남 정부에서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어 통역을 예로 들며 한국어를 제1 외국어로 채택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로서 한국어는 베트남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교육과정 선택과목에 포함되는 ‘제1외국어’가 되었다. 지금 이 상황만 봐도 한국과 베트남이 얼마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지 알 수 있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희망적으로 보인다. 지금도 K-POP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많고 대학생들에게 한국어과가 최고 인기학과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벅차오른다. 제2의 고향 같은 베트남에서 피어나는 '한국 사랑'은 이렇게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