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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14. 2021

엄마 취향이 아니야

무서운 존재

 아들, 딸아~ 너희들이 언젠가 자라서 이 글을 읽고 이해할 날이 오길 바라며 이 공간에 너희와 나의 작은 기억 조각들을 모아보려 해. 엄마를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아~ 우리 엄마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언젠가 우리 여기 쌓인 글들을 읽고 추억을 소환해보자.


  이번에는 너희들에게 엄마가 무서워하는 존재를 알려주고 싶어. 처음부터 공포스럽진 않았어. 그렇다고 사랑스럽지도 않았고 너희들이 좋아하니 받아들인 것뿐이야.

그건 바로 작은 조각의 장난감들이야. 작은 블록 조각들, 킨더 조이를 열면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것들, 마루인형의 구두 한 짝, 반지, 머리핀, 작은 지우개······. 너희들이 참 사랑하지. 이것들을 보면 평생 가지고 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해. 엄마도 처음에는 너희들과 같은 반응이었어. ‘어머~ 예쁘다, 아기자기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이는 공포의 대상이 돼. 이 말을 들을 때면 더욱더.


“엄마 내 도넛 그림 그려진 작은 지우개 어디에 있어?”

너희들은 이럴 때 기억력이 슈퍼 울트라급으로 좋아지더라? ‘오늘 체육시간에 뭐했어?’라고 물어보면 ‘몰라’라고 대답하면서.

“그게 뭐야?”

엄마는 애써 기억 조작을 하고 싶어 져. 뭔지 아는데도 모르는 것처럼.

“지난번 유치원에서 선물로 받아온 지우개 말이야.”

“엄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가지고 놀았잖아. 잘 찾아봐.”

“나 모르겠어. 엄마가 찾아줘.”

“엄만 몰라. 지난번에 네가 가지고 놀았고 어디에 놨는지 잘 생각해봐.”

“모르겠어. 빨리 찾아줘.”

“······.”


네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그것을 찾기 위해 너희들 장난감 방부터 다 뒤지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 결국 장난감 함을 다 뒤지고 나서야 제일 밑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네가 애타게 찾고 있는 그것을 발견했어. 발견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


 두 달 전 우리 집에 서프라이즈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 너희도 기억할 거야. 네가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 후 룰루랄라 하며 양 손에 잔뜩 들고 온 그것들. 집으로 와서 하나씩 선물을 뜯고서 우린 서로 좋아했어. 엄마도 그걸 챙겨준 친구 엄마들의 정성을 생각하니 진짜 고맙더라. ‘다 갚으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뭐가 있는지 들여다봤어. 신기한 물건도 많더구나. ‘하노이에서 이런 선물을 어디서 구했지?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해외배송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본 물건들도 있었어.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엄마들의 매와 같은 서치 능력에 엄마는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단다.


  그중에서 유독 엄마 눈에 띈 녀석이 있었어. 그건 바로 너희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구슬들이 수 백 개, 아니 족히 수 천 개는 비닐에 싸여 있더라.  깨소금 크기가 그나마 비슷하겠다. 이렇게 작은 구슬들을 우리 집에서 생눈으로 본 건 처음일 거야. 엄마는 이런 걸 사준적이 없었지.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며 ‘나 좀 가지고 놀아줘’라며 너희에게 손짓을 보내더군. ‘이건 뭐야?’ 하며 들춰보니 그림 도안에 색색의 구슬들을 붙여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이걸 구슬 아트(?)라고 하나? 아무튼 그런 종류의 것이더라고. 엄마는 그걸 보자마자 공포가 밀려왔어. 이것들을 다 풀어놨을 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과연 그 구슬들이 온전하긴 한 건지. 엄마는 너희들이 다른 선물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이건 좀 더 큰 다음에 가지고 놀자’라며 슬쩍 쇼핑백에 넣어두었어.


  우리 전적이 있잖아! ‘엄마 잘 안돼!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하며 요 조그마한 녀석들을 옮기느라 얼마나 짜증을 낼지 엄마는 안 봐도 눈에 훤했어. 짜증 부리지 않고 스스로 해낼 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올 때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 그렇게 그 녀석은 쇼핑백에 갇힌 채 창고 속으로 직행했지.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제 갑자기 딸내미가 그 녀석을 들고 있는 걸 보았어. 신기해. 이걸 찾아내다니! 지우개를 찾아달라고 떼쓰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엄마 나 이거 할래.”

“그… 걸 지금 하겠다고? 좀 더 언니 되면 하는 건 어때?”

“싫어. 지금 할 거야.”

“그래, 알았어. 해 봐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보자’ 하며 엄마는 상을 깔고 형형색색의 구슬들을 비닐에서 봉인 해제시켰어. 너희들은 신이 났지. 앞으로의 힘든 고난을 모른 체 알록달록 구슬에 이미 정신이 팔렸고 ‘나 핑크, 보라색 할 거야’ 하며 찜을 해댔어. 엄마는 점점 불편해졌어. 너희들 손이 한 번씩 스쳐갈 때마다 그 깨소금 크기의 구슬들은 바닥에 널브러졌어. 몇십 알 정도 잃어버려도 전혀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자꾸 발에 밟히니 신경 쓰이더라. 하나씩 주워 담기 바빴어. 엄마가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더라. 정말 하나도 안 틀리고 그대로 재연됐어. 그래도 기특했어. 지난번보다 짜증 부리지 않고 앉아서 곧 잘하더라고. 어느새 우리는 두 번째 작품에 도전했지. ‘우리 아기들 많이 컸네’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너희들도 인내심에 한계가 왔나 봐.


“엄마~ 이젠 엄마가 좀 해줘.”

“힘들어? 힘들면 내일 이어서 하자.”

“싫어. 오늘 다 할 거야. 근데 엄마가 좀 도와줘.”


엄마는 생각했어. 이걸 스스로 완성하게 내버려두어야 하나, 엄마니깐 도와줘야 하나. 결국 도와주기로 했지. 깨소금 크기의 구슬을 펜촉 같은 거에 하나씩 찍어 올려 그림 위에 그려진 동그라미에 정확히 안착시켜야 하는 작업이더라. 점점 눈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어.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하다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라. 엄마가 다시 90년대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안에는 인형 눈깔들이 널브러져 있었지. 네 할머니와 인형에 눈깔을 붙였어. 참 처절했던 시절이야. 엄마가 인형 눈을 보면 무서운 이유가 이때의 기억 때문인가봐. 그때는 눈깔 하나에 돈이 걸려있으니 필사적으로 했고 지금은 재미로 하는 건 차이가 있어. 하지만 얘들아, 엄마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조그마한 걸 어디에 붙이는 일은 엄마 취향이 아닌 가봐. 눈에도 보일까 말까 한 것들이 제각각 바닥에 흩어져있는 것도 싫고 그걸 떨어질세라 조심스레 집어 드는 것도 엄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아들, 딸아 그래도 이 어려운 구슬 아트(?)를 거의 한 시간 동안 앉아서 완성해내니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네. 엄마는 참 기뻐. 그런데 엄마란 존재는 화려한 작품 뒤에 가려진 그렇지 못한 곳이 눈에 잘 띄더라. 엄마도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나 봐. 그냥 본능이야. 굴러 다니는 언젠가는 발에 밟힐 저 존재들을 빨리 치우고 싶어 져.

너희들이 완성한 작품을 보면 뿌듯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구슬놀이는 엄마 취향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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