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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14. 2021

세 번째 발견한 재능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발견하고 계발하여 지속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재능은 있다. 드문 것은 그 재능이 이끄는 암흑 속으로 따라 들어갈 용기다’라고 말한 에리카 종의 명언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산문 한 편과 시 한 편을 써오라는 여름 방학 숙제를 내주셨다. 산문은 방학 동안 했던 것 중 한 가지를 골라 일기 쓰듯 금방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시는 달랐다. 내 생각을 풀어쓰는 산문과 달리 시는 함축해서 그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짧게 써도 된다는 이점보다 함축된 의미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더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이 고민은 개학 전날까지 이어졌다.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써야만 했다. 

 시를 쓰기 위해  내 몸에 있는 모든 신경을 모두 열었다. 현재 들리는 소리, 눈에 보이는 것, 만지는 것,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냄새, 내가 좋아하는 맛에 집중했다. 머릿속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어떻게 공감각적 심상으로 표현할지 생각했다. 그때 문득 창문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건 화려한 외관의 가로등이 아닌 오직 불빛을 비추는 역할에 충실한 평범한 가로등이었다. 이전까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던 가로등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은 원래 노란색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단순한 노란 불빛도 붉은 불빛도 아닌 그 두 가지 색이 섞여 오묘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불빛은 우리 집 창문에 반사되어 영롱했다. 그것은 매우 밝고 강렬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 신비한 감정을 살려 ‘지금 이 느낌을 시로 써보자’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가로등 아래서>라는 제목을 붙여 시를 완성했다. 내가 본 장면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파스텔로 예쁜 그림까지 곁들였다.

  며칠 후 방학 과제를 검토하신 국어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 손에는 아이들이 쓴 과제가 한 아름 들려 있었다. 과제를 나눠주시며 작품에 대한 감상평도 곁들여 주셨다. 

“김미연” 내 이름이 불렸다.

“네.”

“김미연 학생은 <가로등 아래서>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네요. 굉장히 잘 썼어요. 선생님이 전체 학생들에게 읽어주도록 할게요.”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시를 반 전체 학생들에게 읊어 주셨다.

중학교 1학년은 한참 예민한 시기 아니던 가. 그 상황이 너무 창피했다. 시 잘 쓴 게 뭔 대수라고 이렇게 아이들의 집중을 받아야 하는 가.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내 맘도 모른 체 선생님은 한 술 더 떠 말씀하셨다.

“이 시는 학교 복도에 전시했으면 좋겠어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당시 방학 과제물을 제출하면 잘 쓴 작품은 전교생이 볼 수 있도록 복도나 도서관에 전시되었다. 부족한 내 작품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선생님 제가 독서 클럽활동에서 쓴 시도 전시될 예정이라서요. 이번 시는 전시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 당시 나는 독서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독서클럽에서 활동하는 학생의 작품은 모두 전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 학생의 작품은 한 개만 전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 안 하면 두 작품이 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 그래요? 클럽활동에서 쓴 작품도 걸린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네요.''


결국 방학과제로 낸 작품과 독서 클럽에서 쓴 작품, 두 편은 모두 전시되지 못했다. 전시할 작품이 많다며 클럽활동에서 나온 작품은 전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방학 과제물로 제출한 작품까지 전시 기회를 놓치다니 용기가 없던 내가 미웠다. 만약 작품이 전시되어 더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내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는 날아갔다.


  교대 입학 후 글쓰기 과제는 더욱 많아졌다. 대학 3학년 때 한 국어과 교수님께서 글쓰기 과제를 내주셨다. ‘나’를 소재로 한 글을 원고지 10매에 써야 했다. ‘원고지 10매 분량으로 나에 대해 무엇을 쓰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 고민은 점점 깊어 갔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험을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내가 남과 어떤 점이 다른지 생각해 봤다. 당시 나는 두 번째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그 전에는 회사생활을 했다. 이 경험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들어온 다른 친구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그래서 교대 입학 전 회사를 다닌 경험, 회사를 그만둔다고 부장님께 말한 내용, 교대 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과정, 입학 후에 일어난 일 등을 글로 써내려 갔다. 내가 겪었던 경험을 풀어쓰다 보니 원고지 10매는 금방 채워졌다. 과제를 제출하기 전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어 보았다. 계속 읽어 보아도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너무 재미있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드라마틱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교수님께서 어떤 피드백을 주실지 궁금해졌다. 드디어 과제를 다시 나눠주신 날이 왔다. 

“김미연” 내 이름은  첫 번째로 불려졌다.

“네”라고 대답하는 나를 교수님께서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그 시선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어진 한 마디 “잘 썼어.”

이 한마디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고생스러움에 대해 ‘수고했어’라고 위로해 주는 말 같았다. 이 네 글자는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원고지를 받아보니 ‘내가 봐도 이 부분 재미있다’라고 생각한 부분에 빨간 펜으로 밑줄이 그어 있었다. 교수님께서 공감해주셨다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재능을 두 번째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내 재능은 또 아무도 모르게 묻혀갔다.


  졸업하고 9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능을 발휘해보려 한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떤 분이 내가 쓴 글 밑에 답글을 달아주셨다. ‘글 진짜 잘 쓰시네요. 글이 술술 읽혀요’ 글 쓰는 사람한테 이보다 더 최고의 칭찬이 있을까. 그분 덕분에 내 글쓰기 목표는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쓰자’가 되었다. 

 글쓰기 한 달 후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용기 없던 과거의 나를 떠나보낼 절호의 찬스다. ‘되든 안되든 작가 신청해 보자’란 마음으로 신청서를 보냈다. 결국 단 한 번의 신청 끝에 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드디어 세 번째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과거와 다른 점은 그 재능 앞에 ‘용기 있는 내가 마주하고 있다’란 점이다. 더 이상 내 재능을 모른 척 하지도 겸손하게 굴지도 않기로 했다. 


스쳐 지나가서 몰랐던 첫 번째 기회, 인정받았지만 계속해서 계발하지 않았던 두 번째 기회, 이젠 세 번째 기회를 잡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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