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릉드릉 드르르르르득 …… 드릉드릉드……”
아이들이 체 일어나기도 전인 아침 7시 30분.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일 분 정도 이어지다 잠시 멈추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아이들은 내가 있는 방으로 말이 달리는 속도로 힘껏 달음질쳤다.
“엄마 무서워~”
“무서웠어? 괜찮아. 윗집에서 공사를 하나 봐.”
아이들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짜증이 났다. ‘아~ 정말! 아침 일찍부터 웬 공사를 하고 난리야.’ 아침 일찍 일어나는 하노이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다.
베트남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집 꾸미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주변에 인테리어 가게도 많고 두세 달에 한 번씩 공사 소리가 들릴 정도다. 하노이 아파트는 새집이라도 집마다 인테리어가 다 제각각이다. 한국은 새 아파트를 분양할 때 보통 같은 동에 같은 평수면 집의 구조, 벽지, 장판, 조명 등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그다음은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바꾼다. 하지만 하노이 아파트는 시공업체에서 시멘트만 발라놓으면 그다음은 집주인 몫이다. 같은 아파트의 같은 평수라도 집의 분위기가 천지차이가 나는 이유다. 어떤 주인은 위, 아래층 집을 모두 사서 아예 복층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럼 대문이 2개가 된다. 원래는 따로 된 집을 집주인이 마음대로 개조하면 그렇게도 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계약은 1년 단위의 월세로 이루어지다 보니 세입자가 자주 바뀌는 편이다. 보통은 세입자가 계약 만료가 되어 바뀔 때 벽지나 장판 정도 공사를 하는데 우리 윗집은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나 보다. 두세 달 전 같은 층 다른 집에서 공사를 했을 때는 소리가 이 정도까지 아니었는데 ‘정말 천장이 뚫리는 거 아니야?’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우리 집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집에 혼자 있으니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성난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가 한바탕 지나가면 ‘딱딱딱 딱딱딱’ 망치소리가 났고 망치가 할 일을 다 하면 곧이어 차가운 쇳소리가 우리 집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나가야지.’ 나는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근처 카페로 피신했다. 왜 이런 날은 약속도 없는지 죄 없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차가운 쇳소리는 아이들이 하원한 후에도 계속됐다. ‘대체 공사는 언제까지 하지?’란 생각으로 시계를 쳐다 봤다. 5시 30분이다. 그래도 이제 곧 저녁시간인데 끝나겠지? 저녁 6시가 되자 우리 집을 통과한 수많은 쇳소리, 사자 포효하는 소리, 망치질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제 알았다. 윗집 공사 시간은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인 것을. 며칠 동안 이 시간만 잘 견디면 된다 생각하니 막연한 고통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귀에서 느껴지는 평화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윗집 공사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짜증과 동시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서도 인테리어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20년이 다 된 집이다 보니 손 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 곳에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10년 이상 살거니 제대로 해놓고 살아보자’란 생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우리 집은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돼지우리같은 공간에서 점점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변해갔다. 매주 가서 공사 상황을 체크하고 내가 고른 자제가 맞게 쓰였는지 확인했다. 우리 집이 환골탈태하는 동안 내 장밋빛 미래만을 생각했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의 소음이 났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우리 이웃집 주민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추운데 나가지도 못하고 그 소릴 참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시작한 일이지만 공사에 대한 불평 한마디 해주지 않았던 이웃들이 너무 고마웠다. 겉으로 불평을 안 했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니, 꼭 해야 하는 공사이니, ‘그냥 내가 조금 참자’란 생각으로 이해해주신 거 알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체 공간에 살면서 언제든지 우리 집이 소음을 제공할 수도 있고 소음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입장에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소음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그 소음의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소음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데 있다. 서로 규정과 예절을 지키는 한에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이해심이 아닐까? ‘상대방의 입장 이해하기’ 이 말은 너무 쉽고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대사회에서 가장 부재한 덕목이기도 하다. 오늘도 마음을 넓게 열고 이해심 많은 하루를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