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에 다닌 후 영어가 싫다고 한다

한국식 영어 교육의 실체

하노이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아이들 교육문제였다. 당시 5세, 3세였던 아들, 딸은 한국에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해외로 가면 아이들에게 외국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과 그 속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노이에서 우리 아이들이 다닐 학교(유치원)들을 알아보니 크게 국제학교 킨더 과정, 한국 유치원, 한국식 영어유치원, 베트남 유치원 이렇게 크게 4군데로 나뉘었다. 하나하나 장단점을 따져봤다. 먼저 국제학교 킨더 과정은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나마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다녔고(그래 봤자 20-30%고 대부분은 한국 학생이다) 악기 연주, 실험, 연극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짜여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학비 지원이 되지 않기에 연간 학비는 매우 부담되는 비용이었다. 또한 방학이 길어 그 기간을 모아 보면 일 년에 반은 방학이고 반은 학교를 다니는 꼴이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한국 학생의 비율은 점점 높아져 비용 대비 영어 실력이 늘지 의심이 되었다.


다음은 한국 유치원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한국 학생들을 위해 한국 누리교육과정을 그대로 들여와 한국에서와 같은 교육을 한다.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은 한국인이고 보조선생님들은 대부분 베트남인이다.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적응하는데도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한국보다 유치원비가 비싸고 시설이 낡았다. 또한 외국에서 교육받는 이점을 전혀 체감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다음은 한국식 영어유치원이다. 한국인 선생님, 원어민 선생님, 베트남 보조 선생님이 있으며 대부분 한국 학생들이 다닌다. 한국 본사에서 만든 교재를 사용하고 일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되며 학기가 끝나면 테스트를 통해 진급이 결정된다. 그야말로 학습으로 영어를 배우는 곳이다. 학비는 한국의 영어유치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든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부한 내용을 책으로 확인할 수 있어 한국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하지만 영어를 즐겁게 배우기보다는 책에 갇힌 틀 안에서 그야말로 '한국식으로 공부’하며 영어를 배운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현지 유치원이다. 현지 생활을 잘 익히고 베트남 친구들과 어울리며 베트남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이 열악하며 선생님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영어 교육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민 끝에 한국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한국식 영어유치원으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놀이 위주의 영어유치원을 보내다 원장님의 사업성 짙은 마인드와 허술한 원의 운영으로 현재 유치원으로 옮겼다) 딱히 선택지도 별로 없을뿐더러 ‘역시 영어교육은 경험이 많은 데로 보내야 해’, ‘여긴 공부 많이 시켜서 아이들 실력이 금방 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한국 엄마들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테스트를 보고 반이 결정된다기에 아이가 테스트 보는 동안 원장 선생님과 상담이 이루어졌다.


“우리 유치원은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어요. 교재는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오고 한 달 과정으로 책의 진도가 끝나고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

“원에서는 영어만 사용하나요?”

“네. 원에서는 무조건 영어만 사용해야 해요.”


상담 중 아들의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4 영역으로 이루어졌고 영역별로 점수가 써져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이 테스트로 아이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유치원만의 성적 분석 기술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시험지를 쭉 훑어보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보고 이 상황을 영문으로 쓰시오. 영작 문제였다. 영문을 써본 적 없는 우리 아들은 당연히 쓰기 영역에서 0점을 맡았다. 과연 이 문제를 6살 아이들이 풀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 원장 선생님께 물었다.

“ 6세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영어 문장을 쓸 수 있나요?”

“우리 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점수를 받아야 상위 클래스에 갈 수 있어요. 그나마 하노이에서는 테스트 합격 가능 점수가 낮은 편이에요. 한국에서는 더 치열해요.”


난 충격 속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너무 뒤처지는 건가, 내가 영어 교육의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봤나. 나도 나름 교사이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봤는데, 영어 듣기 해주고 영어책을 꾸준히 읽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원장님이 ‘저 엄마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졌다.


유치원에 다니고 한 달 뒤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

“왜 가기 싫어?”

“여긴 공부 너무 많이 시켜. 그리고 너무 어려워.”

“처음엔 다 어렵지. 계속하다 보면 괜찮을 거야.”


아들의 말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잘만 다니는데 왜 너만 그래?’라고 생각했고 아들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핑곗거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서 영어 동영상보기, 영어책으로 가볍게 영어를 접하다 본격적으로 책으로 공부하려니 힘든 게 당연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다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난 그렇게 아이들을 타이르기 바빴다.


온라인 수업을 보고서야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수업이 진행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7살이 된 아들의 영어 교재는 총 9권. 그날은 듣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제는 <How many do you have?>였다. 선생님은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상 속 친구들은 계속해서 ‘How many do you have?’를 외쳐댔다. 그림을 보고 ‘I have ~~~~.’ 형식에 맞게 답하면 되는 거다. 이 두 형식의 문장이 수업 내내 반복됐다. 그 수업을 보고 내가 중학교 때 봤던 영어 듣기 시험이 떠올랐다. 영어 듣기 시험도 질문을 하면 그에 맡는 답을 찾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이어진 수업은 문장을 듣고 들리는 문장을 빈칸을 채우며 쓰는 수업이었다.

아들은 짜증 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이거 어떻게 써야 해? 너무 어려워."


이런 수업을 몇 개월 동안 따라간 아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지금 일곱 살짜리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일곱 살짜리에게 가혹한 책의 압박과 수업 강도라 생각했다.


어떤 문맥도 없이 주요 표현만을 반복해서 외우는 수업은 내가 중학교 때 충분히 겪어봤다. 그 결과 나는 외국인 앞에서 그 표현을 까먹으면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왜 25년 전 내가 했던 방법을 우리 아이가 그대로 하고 있는 걸까? 영어 유치원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아들과 나는 바로 책을 덮었고 더 이상 온라인 수업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럼 엄마랑 영어책 꾸준히 읽을까?”

“응. 이거 재미없어. 그냥 재미있는 영어책보고 싶어.”


우린 빠르고 돋보이는 길보다 느리고 티 안나는 길을 가기로 했다. 아이의 영어 목표가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함이 아닌 실생활에 써먹기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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