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인간
오랜만에 아이들과 미딩을 방문했다. 미딩은 하노이에 있는 대표적인 한인촌이다. 이 동네에 오면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음식들이 한 동네에 모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겹살, 돼지국밥, 소고기, 밀면, 떡볶이, 감자탕 등 한국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미딩이라는 동네다. 이렇게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 한국 제품이 필요할 때면 택시를 타고 가끔 그곳에 들린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할 일이 마땅히 없던 우리는 미딩 나들이(?)를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계속 집에만 있으니 어디 잠깐 가는 것도 신나는 나들이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기에 머릿속으로 미리 어디를 먼저 갈지 나중에 갈지 동선을 그려봤다. 먼저 약국에 가서 내 간 약을 사고, 문구점에 들려서 털실을 구입한 후 빵집에서 나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간 약을 사고 약국에서 약 2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문구점으로 향했다. 계획은 털실만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고양이들이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리가 있나. 아이들은 다양한 한국 문구 용품에 눈을 번뜩였다. 현지 문구점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들을 보고 마치 처음 본거처럼 ‘와~ 예쁘다’를 연발했다. 동시에 ‘사고 싶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물놀이할 때 쓴다고(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딸 키의 절반 정도 길이의 물총을 더 구입한 후 문구점에서 나왔다. 계획에 없던 물총을 구입하니 내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빵집으로 이동했다. 외출 자제 명령이 내려져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지금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고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기에 그마저 여의치 않은 식당들은 문을 아예 닫은 모양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무서운 요즘 나도 빨리 사고 집에 가자는 생각에 서둘러 빵을 사들고 나왔다. 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빵집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마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베트남인 과일 노점상이 나를 부르며 자두를 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기웃거려서 과일 상태라도 확인했을 텐데 내 손에 들린 보따리들을 보니 내 발걸음은 차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NO’라고 외치고 시선을 피한 체 택시를 기다렸다. 노점상인은 씁쓸한 미소를 띠며 지나가는 다른 한국인 여성분에게 자두를 권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평소 같으면 대목 자리라고 평이 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지만 코로나 앞에선 그 자리도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듯했다.
택시를 타고서야 길거리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생각한 것보다 많은 가게들이 제 할 일을 못하고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3주 전 베트남 정부는 식당, 카페, 가라오케, 술집, 미용실, 마사지 숍 등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리고 외출 자제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서비스 업종의 대부분에 해당된다. 사장님뿐만 아니라 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까지 고려하면 꽤 많은 수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유일한 생계수단을 막아놓고 베트남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아쉽게도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너희들의 삶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듯 베트남 정부는 ‘그냥 아무 말하지 말고 문 닫아’ 한 마디 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수많은 사장님들과 종업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마냥 정부의 영업 해제 명령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 소비자와 밀접하게 관련된 서비스 업종이 문을 닫다 보니 도시는 생기를 잃은 듯 보였다. 굳게 닫힌 회색의 셔터문은 사장님의 마음 상태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 초조, 걱정, 근심, 막막함.
베트남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다. 사회주의의 정확한 뜻을 네이버 지식백과에 찾아보니 ‘인간 개개인의 의사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 여기는 이데올로기’라고 나온다. 웃길 노릇이다. 사전 속에 느껴지는 뜻과 실상이 이렇게나 다른 단어가 또 있을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사회가 빈부격차가 말도 못 한다. 고급 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곧 쓰러질 듯한 판자촌 집들이 즐비한다. 저게 집인가 싶다가도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 있는 모습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한다. 고급 쇼핑몰 앞에선 할머니가 지폐 한 장(베트남 돈엔 동전이 없다)을 얻기 위해 애절한 눈빛으로 구걸한다. 한 푼 만 도와주면 내 하루 생계가 해결된다는 눈빛. 백화점에 비친 네온사인보다 더 간절한 눈빛이다.
내 눈에 비친 베트남의 실상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기보단 돈이 있는 몇몇 만이 잘 사는 나라다. 특히 공무원이 가장 잘 사는 나라, 공안들이 장사하는 가게에 갑자기 쳐들어와 장사 못하게 훼방하고 돈을 갈취하는 나라, 찻길에서 공안과 눈을 마주치면 갑자기 차를 세우고 시비를 걸어 돈을 강탈해가는 그런 나라다(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 공안이 보이면 웬만하면 눈을 피한다).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의 두 계층이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따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모습은 보이지만 절대 섞일 수 없는 사람들, 유리벽 건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숙명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다.
빵집 앞에서 만난 노점 상인의 ‘마담~’이란 외침은 어쩌면 이 상황을 이겨내 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애절한 버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애절한 눈빛을 난 무참히 외면하고 말았다. 그 노점 상인의 눈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비춰줬을까? 섞일 수 없는 유리벽 너머의 사람으로 느꼈을까? 과일 한 보따리만 더 들고 오면 되었을 것을, 내가 얼음처럼 차가운 인간으로 느껴져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