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연고도 없고, 가족도 없는 이곳 베트남 하노이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베트남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 돼’, ‘한국인이라면 다 돈 많은 줄 안다니깐’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들 앞에서 내 자세는 더욱 강경해지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하노이에 온 지 얼마 안돼 현지 사정을 잘 모를 때 둘째 딸이 길거리에서 헬륨 풍선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아마도 그 할머니 상인은 우리 딸이 풍선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의 손을 잡고 그 상인에게 다가가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풍선을 고르게 했다.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덥석 아이 손에 풍선을 쥐어 준건 나의 커다란 실수였다. 가격의 결정권은 이제 완전히 상인에게 넘어간 셈이다. 이 할머니 상인은 우리 딸내미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풍선을 사줄 거라는 확실한 고객을 이미 확보한 거나 다름없었다.
현지 물가를 감안했을 때 풍선 한 개 정도면 약 30,000동(1,500원)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핸드폰 계산기를 그녀에게 쑥 내밀었다. 열심히 두드린 후 찍힌 가격은 80,000동(4,000원). 순간 ‘이 할머니 내가 한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는구나’라는 직감이 왔다. 내가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이라면 모를까 나는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할 사람이니 그야말로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서는 현지 물가에 적응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풍선은 딸내미 손에 쥐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제시한 가격을 계산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 순간 딸내미와 풍선을 연결해주던 흰색 실이 그만 딸내미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갔다. 나는 바로 풍선을 잡기 위해 몇 번의 점프를 해보았지만 풍선은 하염없이 하늘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때 할머니 상인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다른 풍선을 딸의 손에 쥐어 줬다. 그리고 제시한 가격은 160,000동(8,000원). 할머니 입장에서는 맞는 계산이지만 난 뭔가 찝찝하고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녀는 풍선 한 개를 사기 위해 한국돈으로 8,000원을 지불했다.
그 외에도 몇 번의 바가지와 거스름돈이 은근슬쩍 덜 쥐어지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베트남 상인에게 물건을 살 때 가격 흥정은 필수, 돈 확인은 그 자리에서 하기’라는 원칙이 세워졌다(베트남은 카드보다 현금거래가 더 일반적이며 믿을 만한 한국 가게에서 물건을 주문해도 배달하는 베트남 직원이 중간에서 거스름돈을 적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물건을 사도 거스름돈이 없으면 없다고 안 주는 이상한 경험도 몇 번 당했다). 그 결과 처음 제시한 가격의 절반 가격으로 물건을 사는 신기한 일도 종종 겪는 중이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베트남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인을 믿는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다. 특히 우리 집에 모르는 베트남인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여기서 누릴 수 있는 혜택 아닌 혜택이기에 결국 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서 직장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힘든 시절 가사 도우미 시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시간당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한다는 걸 알고 기겁했다.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내 주제에 무슨 가사 도우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시세가 시간당 50,000동(2,500원).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여기서 메이드 안 쓰면 바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싼 가격으로 집안일을 해결할 수 있기에 나도 그 바보 대열에 끼지 않기로 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을 계약하는 날 그녀를 처음 만났다. 집주인,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온 그녀는 ‘씬 짜오(안녕하세요?)’라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형,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머리 그리고 까만 발바닥. 난 그녀의 까만 발바닥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삶이 어떤지 짐작했다. 아무리 베트남에서 메이드의 돈벌이가 괜찮은 축에 속한다해도 명품 옷으로 도배를 한 집주인, 비서 같은 직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부동산 중개인 옆에 선 그녀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부동산 중개인(한국말이 가능한 베트남인)에게 내가 원하는 요일, 시간을 말하고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부동산 중개인은 메이드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우리의 계약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다음 주 그녀는 약속한 시간에 역시 ‘씬짜오’를 외치며 우리 집으로 출근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마담’으로 나는 그녀를 그녀의 이름인 ‘다오’라고 부른다. 반면 아이들은 그녀를 ‘이모님’이라 칭한다. 예전 유치원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교구 정리를 하자고 했더니 한 아이가 ‘제가 정리를 왜 해요? 전 집에서도 정리 안 해요. 메이드가 해요.’라는 말을 듣고서 놀랐다고 하셨다. 난 이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인 그녀들을 ‘메이드’라 칭하며 은근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 으레 자기가 사용한 장난감도 이모님이 치워야 되는 줄 아는 것. 이 두 가지는 꼭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님’ 자를 붙여 '이모님'이라 그녀를 부르게 했고 올 때와 갈 때에도 꼭 인사를 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이모님이 오시기 전에 장난감을 정리하는 일은 아이들이 해야 할 몫으로 남겨뒀다. 내가 '오늘 베란다 청소해 줄래요?'라고 이모님에게 말하는 걸 들은 아들이 '이모님 힘들겠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내가 한 걱정은 기우인 것 같다.
물론 그녀는 우리 집을 깨끗이 해주면 그만인 사람이지만 모르는 사람을 계속 집안으로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누군지 궁금했다. 일을 마친 후 그녀에게 차와 떡을 대접했다. 나름 손님이 오시면 앉는 상석(?) 자리를 그녀에게 내주고 난 열심히 번역기를 돌리며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우리 집까지 출근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40분 걸려요.”
“몇 살이에요?(베트남에서는 나이를 물어보는 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42살이에요.”
“전 39살이에요.”
나랑 3살 차이지만 13살 차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녀는 한국인 또래보다 많이 늙고 왜소해 보였다.
“아이는 몇 명 있어요?”
“아들 2명이고 22살, 20살이에요.”
“베트남에서는 결혼 일찍 하죠? ”
“20살에 했어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니 베트남 여성의 고단함이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그녀가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 말고도 매일 2-3건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고 가끔 '일을 더 하고 싶어요'라며 내게 부탁하는 걸 보면 그녀의 어깨가 왜 이리 짓눌리고 축 처져 보이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결국 처음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우리 집안일을 열심히 해주고 있다. 청소뿐 아니라 말이 안 통하는 나를 위해 택배 아저씨의 전화를 대신 받아주기도 하고, 샤워기가 깨졌으면 새 걸 사와 알아서 고쳐 놓는다. 한창 마스크가 동나 구하기 어려웠을 때 부탁을 하니 척척 구해서 온다. 언젠가는 오자마자 ‘마담, 꿀’ 이라며 아이들 주라고 500ml 생수통에 담긴 꿀을 내게 건넸다. 베트남 꿀이 원래 맛있는 건지 뜻밖의 선물을 받아서 더 맛난 건진 나는 지금까지도 아이들과 함께 그 꿀로 꿀차를 맛있게 타 먹는다. 대신 나는 집에서 안 입는 옷이나 신발, 남편이 들고 온 선물 등은 무조건 이모님에게 안겨준다. 그리고 명절이나 기쁜 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성의를 표시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녀와 나 사이엔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생긴 게 틀림없다. 한국에 가서도 그녀가 여러모로 계속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