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림픽을 보는 이유

언젠가는 내 제자들도

하노이시가 락다운(Lock Down)을 결정한 후 검열은 더욱 심해졌다. 찻길 여러 곳을 공안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필수적으로 직장에 가야 함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통과 가능하고 그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또한 이유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벌금을 물렸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남편이 출근한 지 두 시간 만에 돌아왔다.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단다. 공안들이 사무실로 쳐들어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벌금을 내라며 돌아다닌다고 하니 그들이 과연 경찰인지 깡패들인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꼼짝없이 집에서 4명이 하루 종일 같이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외출하는 자유를 박탈당한 체 집에서 지내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집안에서 격리를 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흡사 수용소에 수감된 수용자들의 정신상태와 비슷하다고 하니 이 또한 보통 일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평소 지내던 대로 각자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 할 일을 했다.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일을, 아이들은 평소 하던 공부를 끝내면 자기만의 놀이 장소로, 나는 식탁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뜨개를 했다. 무료할 것 같던 격리 생활에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 건 바로 <도쿄 올림픽>을 개막했다는 사실을 안 후다. 인터넷에는 올림픽에 대한 기사가 매일 쏟아져 나왔다. 작년에 개최되었어야 하는 대회가 이미 일 년이 미뤄진 상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코로나로 시름 중인 상황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그들만의 리그’ 일 가능성이 컸다. 나 또한 관심 밖이어서 언제 하는지도, 누가 기대주 인지도 몰랐다. 시작했다고 하니 한 번 TV를 틀어봤다(우리 집엔 한국 TV가 나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계 올림픽, 하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을 모조리 다 챙겨봤다. 몸을 직접 쓰는 건 싫어했지만 눈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건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사람인지라(비록 TV로 지만) 이런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를 앞두고는 날짜까지 세가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4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 월드컵을 겹치지 않게 연도를 정한 국제 스포츠 기구(?)에 감사드렸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2년 후인 2022년이면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는 식이다.(올해는 일 년만 기다리면 된다)


4년마다 개최되는 스포츠 축제를 보면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를 실감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시청 앞에 가서 응원하며 승리에 고취돼 모르는 사람과 하이파이브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게 벌써 거의 20년 전이라니, 2012 베이징 올림픽에서 불모지였던 수영 종목에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 땄을 때가 벌써 13년 전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어른들이 ‘30대는 30의 속도로, 40대는 40의 속도로 50대는 50의 속도로 세월이 달려가’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됐다.


TV에서는 남자 수영 자유형 200M 결승이 하고 있었다. 수영계에서는 박태환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유망주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새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생인 황선우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그와 금메달을 딴 선수와의 차이는 단지 1.04초였다. 1초의 차이로 메달이 갈리는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 1초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선수들은 열심히 땀 흘려 준비한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든다. 요즘은 메달을 따건 안 따건, 우리나라 선수건, 아니건 최선을 다해, 매너 있는 모습으로 경기를 마친 선수를 응원하는 추세다. 자유형 100M 예선에서 자신의 종전 기록을 뛰어넘어 한국 신기록을 달성한 그는 메달을 걸지 않아도 이미 빛나는 사람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던 이상화는 본인이 큰 대회를 앞뒀을 때 집안 풍경을 마치 초상집과 같다고 표현했다. 대회에 대한 부담감으로 가족들은 말수가 적어지고 웃음도 사라졌다고 한다. 가족들도 모두 자신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애쓰며 대회가 끝날 때까지 마음 졸이며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영광의 이면에는 수많은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려는 도전, 그리고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학연, 지연, 불공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제자 중엔 축구선수를 꿈꾸는 두 명의 제자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말이면 수도권, 지방으로 대회에 나가느라, 평일에는 훈련하느라 바쁜 와중에 학업에도 열심히 였던 두 녀석. 그 두 친구가 공통적으로 나에게 한 약속이 있다.


선생님 저는 TV에 나오는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될 거예요. 꼭 지켜봐 주세요.


내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챙겨봐야 하는 이유가 또 생겼다. 언젠가 내 소중한 제자들이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자신의 꿈을 이룰 날이 올지도 모르니깐. 아마도 난 그때는 이상화 부모처럼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 졸이며 TV를 보고 있을 지도.



**사진 출처: 조선일보 황선우 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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