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도 여백의 미가 필요해요

형편에 맞게

뭐만 생각하면 뭐만 보인다고 요즘 내가 바로 그 꼴이다. 그동안 TV를 봐도 광고는 자세히 보지 않던 내가 요즘 가전제품, 가구, 인테리어 광고만 나오면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 연말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해서 대부분의 살림을 다시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복면가왕>을 보고 있는데 익숙한 노랫소리와 함께 광고가 나왔다. 그 노래는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이었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라 아직까지 가사를 외우고 있던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와중에 화면 속에 차례로 등장한 삼성 비스포크(BESPOKE) 가전제품이 눈이 들어왔다.


전시되어 있던 세탁기가 스스로 움직이며 한 가정집으로 배달되는 것으로 광고는 시작된다. 그리고 하나씩 클로즈업되는 가전제품들. 노랑 색감이 눈이 띄는 냉장고, 구석진 곳에 떨어진 젤리까지 흡수하는 무선 청소기, 싱크대 밑에 설치된 건조기, 초록색 오븐, 무풍이지만 시원한 에어컨, 건조기에서 꺼내자마자 입을 수 있는 옷, 인덕션렌지, 공기청정기, TV, 집 어디에든 놓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미니 냉장고와 알아서 움직이는 로봇청소기까지.


그 광고를 보면서 ‘저런 가전제품으로 집을 꾸미면 얼마나 예쁠까?’와 함께 ‘요즘 신혼부부들은 처음부터 저 가전들을 다 장만하고 살까? 그러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요즘은 청소기도 기본 100만원대이고 거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공기청정기, 요즘 많이들 선호하는 스타일러기, 고급 기능이 첨부된 밥솥까지 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타일에 색상도 자유자재로 선택 가능하고 그야말로 개개인의 니즈를 고려한 맞춤 가전이라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예쁜 가전제품들로 꾸며진 광고를 보니 예전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올해로 결혼생활 8년 차인 나는 결혼할 당시 작은 평수의 집에 맞게 최소한으로 신혼살림을 장만했다. 가전제품은 꼭 필요한 세탁기, 냉장고, TV, 밥솥이 전부였다. 이미 결혼한 친구들은 모두 ‘무조건 큰 걸로 사. 아니면 나중에 후회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세탁기는 드럼세탁기가 아닌 통돌이로, 냉장고는 집 크기를 고려한 보통 사이즈로, TV는 거실에서 보기에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구입했다. 밥솥도 기본 기능만 있는(지금도 기본 기능만 사용하는) 6인용 사이즈다. ‘최소한으로 준비하고 생활하면서 필요하면 장만하자’란 생각이었다. 큰 사이즈로 장만하지 않아도 통돌이는 깨끗하게 제 역할을 해냈고 냉장고는 필요한 재료를 채우고도 여유공간이 충분히 확보될 만큼 넉넉했다. 이건 네 식구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다들 신혼때는 그렇게 시작하는 줄 알았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연구실에서 선생님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이로 4년 전에 결혼을 해서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나도 첫째를 임신 중이었고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날 선생님은 엄마와 통화 중에 한 이야기보따리를 동학년 선생님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사촌 남동생이 결혼을 했거든요. 방금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결혼한 여자 쪽에서 김치냉장고를 안 해왔대요. 요즘 김치냉장고는 다 기본 아닌가요? 그리고 세탁기도 드럼 세탁기가 아니고. 요즘 드럼 세탁기는 필수잖아요. 어떻게 안 해올 수가 있어요?”


선생님은 그 얘기 뒤에도 신부 측에서 예단으로 뭘 준비했는지, 외가 쪽 식구들이 신부가 준비한 예단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면서 가족의 분노를 대변하듯 연신 화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할 말을 잊었고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어디선가 망치가 날아와 내 머리 한구석을 치는 듯했다. 선생님의 화난 표정도 꼭 나를 조준해 있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란 말에선 내가 상식 이하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 역시 김치냉장고는 신혼살림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았으며 세탁기도 드럼세탁기가 아닌 통돌이였다. 그리고 곧 궁금증이 몰려왔다. 사촌동생 결혼 상대자가 신혼살림으로 뭘 해왔는지 사촌누나가 왜 그렇게 관심을 보일까? 그리고 그게 과연 흉볼 거리가 되는 건가? 잘 살면 그만 아닌가?


듣고 있던 내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도 김치냉장고 안 해갔어요. 집에 놓을 데도 없고 저에게는 꼭 필요하지도 않아서요. 이걸 왜 꼭 해가야 하나요? ”

선생님은 약간 당황해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요즘 다 해가지 않나요? 저는 결혼할 때 당연히 다 해갔어요.”

“필요하면 해가는 거고 우리처럼 김치를 별로 먹지 않으면 안 해갈 수도 있죠. 다 형편에 따라 하는 거지 꼭 해가야 하는 품목은 없어요. 그리고 우리 집도 드럼 세탁기 아니에요. 전 통돌이가 편해요. 세탁도 잘 되고 전혀 문제없이 잘 쓰고 있고요.''


그 후로 4년 후 신혼집보다 2배 넓은 크기의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우리 집 살림살이는 비슷했다. 통돌이는 하노이에 오기 전까지 6년 동안 우리 집 빨래 일을 충실히 담당했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산 김치냉장고는 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 우리 집 실정에 맞게 가장 작은 사이즈로 구입했다. 작은 사이즈를 구입했다고 해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이왕이면 큰 거 사자’란 생각으로 큰 사이즈를 구입했다간 비좁아진 부엌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의 신혼집을 상상해봤다. 당시 우리 집 크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지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남들이 산다고 하니 따라서 장만한 살림이 집 이곳저곳에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내 생각은 동일하다. 남들 집에 있다고 해서 그 물건들로 다 채워야만 집에 행복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난 여전히 각자의 집 크기에 맞게, 형편에 맞게 갖춘 살림으로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좋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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