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으니 엄마 목소리가 한층 낮게 깔려 있었다. 다른 날과는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미세한 차이에도 엄마의 기분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내 귀는 예민해져 있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구나.
“엄마 무슨 일이야?”
“……”
말하길 주저하는 사이 생긴 침묵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엄마 무슨 일인데? 말해봐.”
“엄마, 아빠랑 이혼하려고. 누가 요즘 참고 사니? 엄마 아빠랑 도저히 못살겠다. 너희들도 이젠 다 결혼했고 엄마도 남은 인생 자유롭게 살고 싶다.”
엄마는 잠깐 가진 침묵이 무색할 정도로 그동안 참고 억눌렸던 감정을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또 왜 그러실까’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이젠 익숙한 레퍼토리를 듣는 듯 별생각 없이 맘에도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럼 하세요. 엄마가 진짜로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이제 엄마도 엄마 인생 사셔야지. 그러면 얼마 없는 재산도 나눠야 할 꺼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어디에다 집을 얻으시려고? ”
나는 엄마 아빠의 이혼이 확정이라도 된 듯 한 술 더 떠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속 뜻은 ‘현실이 이러하니 그냥 사세요’란 의미가 더 컸다.
“어디 방 하나라도 못 구하겠냐.”
순간 엄마 목소리에서 지금 엄마에게 필요한 건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아빠랑 싸웠구나!”
“무슨 대화가 통해야 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어. 뭐 말 한마디를 해도 홱! 하며 화를 내니 무슨 말이 통하니.”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방에서 싸울 때마다 옆방에서 숨죽이며 불안에 떨던 내가 생각났다. 그 불안했던 소녀는 성장해서 마음이 단단한 어른으로 자랐지만 엄마와 아빠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끼리 만난 듯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신경전은 커서도 계속되었다. 주고받는 말속에는 마음까지 할퀴고도 남을 칼날이 드리워 있었다. 상극도 이런 상극이 또 있을까. 부부는 맞춰가는 거라지만 엄마, 아빠에겐 그런 의지마저 없어 보였다. 엄마가 지금 이렇게 몸도 아프고 정신적으로 아픈 건(우울증) 아빠랑 결혼하고부터라고 했다.
엄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성격인 반면 마음은 조금만 부딪쳐도 깨지는 유리알 같았다. 주변에 쉽게 흔들리고 끊임없이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다. 그게 잘 안되면 여지없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가족에게 드러냈다. 엄마를 보듬어 주어야 할 아빠는 정작 표현에 서툴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대화보단 ‘이제 그만 하자’며 입을 닫으셨다. 평소에 누가 말 거는 사람이 없으면 집에서 말 한마디 안 하시는 아빠. 결혼기념일, 엄마 생일도 한 번도 챙겨주시지 않던 아빠. 오직 ‘성실’을 무기로 삼지만 돈복은 쥐뿔도 없었던 아빠. 밖에서는 호인이라고 불리었지만 엄마에겐 ‘고집 세고 재미없고 돈복도 없으며 고지식한 사람’ 그 자체였다. 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엄마, 경제력 없고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는 아빠 모두를 원망하며 자랐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 아이에겐 절대 저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어른이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큰 어른이다. 어른의 눈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곧이어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토해내듯 엄마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갔다. 지금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엄마 지금 많이 힘들구나.”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 아무도 내 편이 없고 너무 힘들어. 엄마는 지금 너무 외로워.”
엄마는 이미 올해 7월 지인과 삼촌의 죽음을 경험했고 최근 딸 같은 조카의 혈액암 투병 사실에 많이 괴로워했다. ‘엄마는 이미 살만큼 살았으니 내가 대신 아파해 줄 수만 있다면 좋겠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픈 조카를 위해 엄마는 언니(나에겐 이모)에게 도움을 주려 다가가려 했지만 이모는 완강히 거절했다. 나 지금 너무 힘드니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거기에 아빠와 말다툼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모와 아빠가 하는 말은 거침없이 달려드는 맹수의 발톱으로 변해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것도 아주 깊고 깊게.
순간 내 앞에는 67세가 아닌 17살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처럼 여리다 못해 상처로 조각조각 갈라져 있는 소녀의 마음이. 그동안 원망만 했던 엄마가 가엾게 느껴졌다. 엄마가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집안에 오직 아들바라기 부모 밑에서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한 셋째 딸로 자란 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와 어린 자녀를 때리기 일쑤였고 그런 아빠를 마주칠까 자녀들은 무서움에 떨었다. 매 맞는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엄마가 토해낸 울분은 옆에서 위로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엄마보다 더 넓은 어른이 되었다.
아무도 보호하지 않던 어린 소녀를 이젠 내가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 형제들에게 받지 못한 사랑도 마치 내 딸처럼 다 줄 거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정말 정말로 엄마 사랑해. 난 엄마가 이제 그만 아파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래 알았어. 엄마도 마음 잘 다스릴게. 엄마도 우리 딸 많이 사랑해.♡”
“내가 곧 한국 가니깐 가면 나랑 데이트 많이 하자.”
“그래.”
40이 넘어도 엄마에게 듣는 사랑한다는 말에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