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식 화장실, 꿈에나 존재하는 공간

피할 수 없는 화장실 청소

일요일 오후가 되면 마음속에 큰 돌덩이가 앉은 기분이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라고 마음속으로 외치지만 내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에이 빨리 해버리자’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간다. 주부가 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기 싫어 뭉그적거리는 일이 바로 화장실 청소다.


내가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바로 건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혼집을 알아볼 때부터 화장실은 건식으로 사용하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인테리어 잡지를 찾아보곤 했었다. 사진과 잡지 속에서 본 화장실은 호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예쁜 타일과 조명으로 장식되어 었었다. 그중 내가 첫눈에 반한 곳은 나무 바닥에 나무 세면장, 이동식 욕조로 꾸며진 곳이었다. 세면대의 흰색과 나뭇결이 살아있는 갈색과의 조화는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곳은 당연히 건식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인 듯 아닌 듯, 마치 거실의 일부분처럼 꾸며진 공간을 보고 '예쁜 화장실=건식 화장실' 이란 공식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우리 집도 건식으로 꾸며야지.


그러나 현실은 ‘꿈은 꿈일 뿐이야’라고 외쳐댔다. 우리 집 화장실은 좁은 공간에 샤워실(욕조)과 세면대, 양변기가 모두 같이 있다 보니 도저히 물이 안 튀려야 안 튈 수 없는 구조였다. 아이들이 욕조 안에서 거품 풀고 물놀이라도 할 때면 ‘건식으로 사용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인 점도 있는 반면 불편함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바닥과 벽 사이에는 물때와 곰팡이가 자주 끼었고 화장실에 들어올 때면 환풍기를 틀어도 기분 나쁜 눅눅함이 느껴졌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미끄럼 방지패드도 따로 깔아야 했다. 구석진 곳에 낀 물때뿐만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패드 사이사이에 낀 곰팡이까지 모두 청소 대상이다. 화장실 청소할 때가 되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숨이 절로 올라왔다.


하노이에 와서 현재 살고 있는 집 화장실은 한국 집보다 넓고 샤워실이 문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바닥 타일 또한 큼지막해 건조가 잘 되었고 조그마한 창문까지 나있어 보자마자 ‘건식 화장실로 사용하면 딱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즉, 샤워실은 습식, 양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곳은 건식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드디어 나의 로망을 하노이에 와서 실현하나 싶어 기대감에 부풀었다. 무엇보다 바닥에 물기가 없다 보니 욕실 슬리퍼 없이 맨발로도 쉽게 오고 갈 수 있어 편리했다. 청소도 손쉬울 것 같았다. 바닥청소는 떨어진 물기는 수건으로 닦고 청소기로 밀어주고 세면대와 양변기는 더러울 때마다 걸레나 휴지로 닦아주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로망은 며칠을 못 가 처참히 깨지고 말았다.


어느 날 아들이 쉬를 싸고선 나를 불렀다.

“엄마, 와보세요.”

“왜?”

“엄마 쉬가 바닥에 튀었어.”


내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변기와 바닥에 쉬가 이리저리 튀어있었다.

요즘 혼자 화장실로 달려가 스스로 볼일 보는 연습을 하는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쓰고 나온 자리에는 누가 봐도 ‘나 왔었어’란 티를 냈다. 그때마다 나는 얼른 휴지를 풀어 닦기 바빴지만 찝찝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메이드가 와서 청소할 때도 마른걸레로 이렇게 닦기만 했던 거다.

세제 없이 계속 닦이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은 그대로 있다는 거 아냐?

한번 든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고 급기야 구석 한편에 고이 모셔두었던 세제를 집어 들었다. ‘그동안 못 닦은 묶은 때까지 다 씻겨 버리자’라는 심정으로 빡빡 문질렀다. 세제 거품으로 가득한 세면대, 양변기, 바닥에 샤워기로 마구 물을 뿌렸다. 그동안 물이 튀면 불편했던 마음은 묵은 때가 씻겨나간다는 생각에 개운함마저 들었다. 이어서 바닥에 고여있는 물기를 스퀴즈로 밀어 하수구 구멍으로 흘러 보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윤이 나는 바닥을 보니 위로가 되었다. 이어서 마른걸레로 세면대, 양변기 등을 닦았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물로 화장실을 청소했을 뿐인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 다.


우리 집 같이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선 온전한 건식 화장실을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칫하다 건식 화장실의 편리함을 누리기 전에 아이들에게 잔소리 폭탄을 날리며 스트레스받는 자신을 먼저 볼지도.


여전히 나에겐 화장실 청소는 하기는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물청소의 개운함을 대체할 만한 획기적인 건식 화장실 청소법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물청소를 고집할 생각이다.

건식으로 예쁘게 꾸며진 화장실은 아직 나에겐 꿈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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