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면 가장 두려운 '이것'
만반의 준비
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Sep 12. 2021
두 달 후면 드디어 하노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떠난다. 아이들이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한국으로. 아이들 애국심이 이리도 높았나 놀라기도 하지만 사실은 꿍꿍이가 숨어 있다.
“엄마 빨리 한국 가자. 빨리 가고 싶어. 한국 언제가? 응?”
“한국이 왜 가고 싶어?”
“음…… 추운 겨울이 있잖아.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할 수 있고, 썰매도 타고.”
"아빠랑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괜찮아?"
"괜찮아. 대신 눈사람 만들고 놀 수 있잖아."
아빠도 이긴 눈 사랑이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에 온 2년 동안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을 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을 구경할 일도 없었다. 그 사이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후텁지근한 여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추운 겨울이 되었고, '하노이는 눈이 안 오는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어떻게 썰매 타고 오셔?'라는 궁금증을 키웠다. 더욱이 한국 집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둘째(한국을 떠날 당시 2년 8개월)는 눈과 뒹굴던 기억이 전무하다. 둘째에게 눈은 영화 <겨울 왕국>에서 본 것처럼 온 세상을 깨끗하고 하얗고 만들며 엘사처럼 환상적인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름대로 다시 시작될 한국생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새로 사야 할 것들을 리스트로 작성하고, 다른 집들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궁금해 온라인 집들이를 하고, 짐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지고 갈지, 짐이 오는 동안은 어떻게 생활할지, 자가격리 기간에는 무엇을 할지 등등. 내 마음은 이미 한국 집으로 향해 있었다.
한국에 대한 생각은 동네에서 만난 인연들의 모습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통해 각별한 인연을 쌓았던 언니, 동생들, 우리가 베트남에 간다고 했을 때 자기 아들도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일해 일명 ‘베트남 전문가’라고 했던 부모님 또래인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 매일 아침 아들 등교를 시켜주며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했던 인상 좋은 아주머니, 놀이터에서 한 두 번 같이 놀며 스쳐 지나간 인연들, 그리고 혼자 사시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아랫집 아주머니까지……. 그 집으로 이사를 가고 베트남으로 가기까지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참 좋은 이웃들을 만났다. 비록 떨어져 지낸 시간이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난 그 이웃들을 다시 마주한다면 반가운 마음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다시 인사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도 그럴 거란 확신이 든다.
하지만 딱 한 분. ‘이 분’만은 우리 가족을 다시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감이 오질 않는다.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겉으론 웃고 반가운 척해도 속으로는 ‘왜 또 왔나’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바로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아주머니다. 그 집으로 이사를 가고 며칠 후 난 과일을 들고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는 안면을 트기 위함도 있었지만 일종의 밑밥을 까는 목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윗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아주머니는 조그마한 문틈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며 낯선 이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내 얼굴을 빠르게 훑어 나갔다. 뒷배경이 컴컴한 걸 보니 평소 저녁 시간이 되면 거실 불을 끄고 생활하시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윗집에 새로 이사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라며 준비해 간 과일을 건넸다.
“아이고, 뭘 이런 걸……”
“저…… 뛰는 소리가 많이 들리죠?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많이 어려서요. 조심하겠습니다. 그래도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리는 좀 들려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다 그렇죠 뭐. 저도 비슷한 또래 손주가 있어서 이해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암튼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우리의 첫날 인사는 화기애애하게 끝이 났다. 아랫집에 우리 집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손주를 둔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사신다니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아이가 없는 분이거나 한참 예민한 수험생이 있는 집이라면 난 더욱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의 ‘괜찮다, 이해한다’라는 한마디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그 후로 가끔씩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고 아이들과 함께 한 날도 있었다. 어느 날 아이들과 내가 인사를 건네니 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이 말하셨다.
“너희들이구나? 그렇게 뛰는 녀석들이. ”
"...... 죄송합니다......"
"뭐, 괜찮아요."
아주머니의 핀잔인 듯 아닌 듯한 말투. 확실한 건 처음 인사를 건넸던 푸근한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냉기가 서려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 1층으로 내려가는 약 20초의 시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화기애애한 만남이 어색함으로 바뀌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말의 뉘앙스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게 한국말 특징 아닌가. 가령 ‘잘한다’라는 말이 진짜로 잘해서 그런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잘~한다’처럼 ‘잘’에서 말꼬리를 늘리면 절대로 잘한다는 게 아닌 것처럼.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괜찮아요’라고 말은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아요’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하노이에 사는 동안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인근 공사장에서 못질하는 소리가 일상처럼 적응된 후로 아파트 안에서 발생하는 소음에도 너그러워졌다. 낮에는 조용하다 밤이 되면 들리는 드릴과 못질 소리, 새벽시간에도 천장을 뚫고 나오는 TV 소리, 복도에서 아이들이 축구하는 소리. 심지어 대문을 닫고 약 10M 떨어진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아이들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워낙 미친 방음력을 자랑하는 곳이라 '원래 이곳이 이런 곳이구나'라며 살아왔다.
하지만 한국은 층간소음으로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곳 아닌가. 한국에서 층간 소음 기사를 읽을 때면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고 지낸 과거를 소환하듯 아랫집 아주머니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이 것,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한국에선 꼭 생각해서 신경 써야 하는 이 문제. 돌아기기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