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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ug 30. 2021

하노이 새벽시장 풍경

시장 추억하기

어릴 적 엄마와의 추억 중 하나는 재래시장에 가는 것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 어깻죽지를 부딪치기도 ‘00 사세요’라는 말에 귀가 따가울 때도 있었지만 생동감 넘치고 사람 냄새가 물씬 는 시장이  참 좋았다. 특히 명절을 앞두곤 그 작은 골목에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지만 봉지 속에 듬뿍 담긴 정이 있었기에 마음만은 태평양처럼 넓은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고 이사 간 집 근처에는 시장 대신 대형마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깨끗하고 쇼핑하기 편리한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했지만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날것 그대로의 풍경과 정겨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기에 아쉬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따라 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핫도그를 먹기 위해서다. 지금은 핫도그만 파는 전문점이 생기고 핫도그 종류도 많아졌다. 햄만 들어있는 핫도그, 햄 대신 치즈가 들어있는 핫도그, 숯불갈비맛 핫도그, 가래떡 핫도그 등. 이름만 읊어도 저절로 군침이 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간 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핫도그 매대에는 딱 한 가지, 설탕을 잔뜩 묻힌 소시지 핫도그만 팔았다. 아주머니는 ‘설탕 묻혀 줄까요?’라고 묻지도 않는다. 기름에 튀겨진 핫도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설탕 속으로 직행한다. 설탕은 필수, 케첩은 선택. 설탕 목욕을 한 것도 모자라 나는 케첩도 최대한 길게 뿌렸다. 한 입 와작와작 베어 물며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간 시장,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었다.  
 

내가 재래시장을 다시 찾게 된 건 하노이에 오고부터다. 물론 중간에 여행지를 가면서 재래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동네 주민으로 재래시장을 방문한 건 실로 오랜만이다. 베트남은 아직 대형마트보다 시장에서 장보기가 익숙하다 보니 길가다 매대를 펼치고 무언가를 파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조그마한 시장이 나온다. 아침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이다. 새벽 5시 30분, 누군가는 꿈속에 있을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주한 시간이다. 상인들은 막 문을 열고 주인을 기다리는 상품 진열로 바쁘다. 시장이 시작되는 골목에 들어서면 맨 처음 나를 반긴 것은 꽃들이다. 베트남인들은 꽃을 좋아하고 자주 산다. 우리나라 편의점같이 조그마한 마트 구석에도 항상 꽃이 한아름 차지하고 있으며 금방 팔려나간다. 키가 큰 해바라기부터, 빨간 빛깔이 매혹적인 장미, 눈꽃 송이 같은 국화, 흐드러지게 핀 안개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도 펼쳐진다. 금속 매대에 헐벗은 몸으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녀석들. 무더운 여름날 고기 보관은 당연히 냉장고에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에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아마 우리나라 70~80년대에도 이렇게 고기를 팔지 않았을까. 신기했지만 너무 뚫어지게 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얼른 다음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이어서 알록달록 형형 색깔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과일가게다. 마트보다 과일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아쉬운 건 우리 가족이 열대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거의 눈으로만 맛을 즐기고 돌아온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이것을 사기 위해선 기꺼이 들어간다. 바로 코코넛이다. 한 통에 한국돈으로 500원. 한국 마트에서도 파는 동글동글하고 크기도 작고 예쁘며 바로 빨대를 꽂아 먹기 편하게 만든 코코넛은 비싸기도 하지만 내 성에는 차지 않는다. 진짜 코코넛은 야자수에서 바로 따온 듯 투박하면서 크기도 더 크다. 기본적으로 둥그스름하지만 좀 더 길쭉한 것, 넓적한 것 등 모양도 제각각이다. 마트에서 파는 예쁘장한 비주얼과는 거리가 있다.


코코넛을 주문하면 주인은 먹기 편하도록 큰 칼로 틈을 내준다. 나는 보통 5~6통을 사들고 코코넛이 새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고 오는 것으로 새벽 산책을 마무리한다. 크기도 크거니와 무게도 상당해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는 손바닥에 비닐 자국이 선명해진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닐에서 꺼내 냉장고에 반나절 넣어둔다. 무더운 여름 갈증이 날 때 대접 위에 코코넛을 올려놓고(모양이 제각각이니 서 있질 않음) 빨대를 꽂아 먹을 때면 마치 사막 위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덤으로 빵집에서 산 바게트 과자까지. 아침이 시작되기 전인데 마음은 풍성하다.


정겨운 하노이 시장 풍경을 다시 느끼고 싶다. 손자국이 선명해지도록 들고 왔던 코코넛과 한아름 내 품에 안긴 꽃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은 모든 게 그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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