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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Sep 10. 2021

엄마가 아프면 생기는 일

아이들에겐 치유하는 힘이 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비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몰찬 바람에 따라 빗소리가 나름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꿈일까 생시일까. 잠결에 몸을 일으켜 창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리는 돌덩이를 얹은 것 마냥 무겁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왔다.

‘헉, 몸이 이상하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몸을 도저히 일으킬 수 없기에 다시 5시 30분으로 맞춰놓고 돌아 누웠다. 5시 30분. 또다시 알람이 울렸다. 다시 6시로. 다시 6시 30분. 그리고 다시 7시로. 결국 난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고서야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새벽 기상을 시작한 이후로 몇 개월 만에 신체 리듬이 깨지고 말았다. 몸은 일으켜 세웠지만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어지러웠다.  


백신 2차 접종 후유증이 더 심하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어깨를 한 번 돌릴라치면 온 몸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한테 얻어맞은 거 마냥 쿡쿡 쑤셨다.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서라도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힘을 내야 했다.


우리 집에는 1호(7세)와 2호(5세)가 있다. 아직 스스로 하기엔 마냥 어린 나이지만 혼자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오늘은 아이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침은 간단히 먹자’는 우리 집 가훈(?)에 따라 아침으로 시리얼과 과일을 준비했다. 나도 간단히 먹은 후 다시 침대로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오늘은 엄마가 몸이 아파서 너희들끼리 공부하고 놀 수 있지? 2호는 모르는 거 있으면 1호 오빠한테 물어보고.”

“응, 알았어.”


홈스쿨링 중인 아이들은 하루 중 자기가 해야 할 것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놀 수 있다. 영어 공부를 마친 2호가 갑자기 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공룡 화석 찾기 놀이할 건데 잘 안 돼.”


공룡 화석 찾기. 이건 아이들이 한 번 놀고 나서야 ‘괜히 사줬다’라고 후회하는 아이템이다. 딱딱한 돌 속에 박혀있는 공룡 뼈를 찾는 건데 가루가 어찌나 날리는지 한 번 하고 나면 거실 바닥이며 온 몸에 가루 투성이다. 준비며 뒤처리까지 번거로운 이 놀이를 아침부터 하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갔다. 가루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비닐 커버를 깔고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물까지 준비했다.


놀이하도록 준비를 마친 후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얼마 후 1호가 다 했다며 방으로 왔다. 온몸에 석고가루를 묻힌 채로. 2호는 하다가 중간에 포기한 모양이다. 안 되겠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또다시 출동해야 했다. 예상했던 대로  바닥에 석고가루가 흩어져 있었고 2호의 옷과 팔, 다리에도 회색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앗. 뿔. 싸!’


아이들을 바로 화장실로 직행시키고 나는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바닥이 사정없이 빙글 뱅글 돌았다. 널브러진 석고가루처럼 내 정신도 이리저리 흩어졌다.

'힘내자. 힘내자. 난 엄마니깐.'

 엄마는 누워있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든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바닥을 닦고 아이들 목욕을 시켜주니 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을 대충 먹었기에 점심은 밥을 줘야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땅한 반찬이 없다. 그 와중에 계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혼자 잘해먹었던 ‘간장 계란 비빔밥’이 생각났다.

“오늘 점심은 간장 계란 비빔밥 먹자.”

“응. 알겠어.”


저렇게 말해놓고선 마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반찬이 없을 때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는 메뉴, 지겹게 먹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은 메뉴. 그게 나에겐 ‘간장 계란 비빔밥’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름 참기름과 깨소금까지 뿌려가며 고소함을 더했다. 한 입 맛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엔 어쩔 수 없이 먹었지만 오랜만에 맛보니 이 또한 맛있었다. 흔하디 흔한 재료지만 맛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다행이도 별미 메뉴를 먹는 듯 맛있다며 깨끗이 비웠다. 재료와 정성은 덜 들어가도 세대가 흘러도 간장 계란 비빔밥의 맛은 언제나 진리인가 보다.


점심 식사 후 나는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다. 약을 먹고  머리가 아픈 건 좀 나아졌지만 으스스 춥고 몸살 기운은 여전했다. 누워있는 와중에 아이들끼리 하는 대화가 귓속에 들어왔다.

2호가 말했다.

“엄마랑 술래잡기할래.”

이어서 1호가 말했다.

“안 돼. 오늘 엄마 아파서 우리랑 못 놀아. 오늘은 우리끼리 놀아야 해.”

역시 22개월 먼저 태어났다고 오빠 노릇 제대로 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디.

오늘은 우리가 엄마 챙겨드리자


아이들은 쟁반에 물과 간식거리를 들고 침대로 달려왔다. 커튼을 치고 은은한 조명까지 방을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엄마 이거 먹고 힘내. 엄마는 지금 병원에 왔고 우리가 의사 선생님 할게.”

순식간에 병원놀이로 탈바꿈됐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죽 새어 나왔다. 엄마를 돌보겠다며 침대 옆으로 의자를 놓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이들. 그들의 눈빛에서 에너지가 전해졌다.

"고마워. 엄마 힘낼게."

아이들이 건넨 위로 한 마디에 힘이 불쑥 솟아났다. 마냥 어린것 같았던 아이들은 사실 엄마에겐 약보다 더 큰 치유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엄마 이제 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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