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행

by 민경남

집에 돌아오니 추위에 떨었던 몸이 스스르 녹기 시작했다.


욕조에 담긴 뜨거운 물은 고단한 몸을 풀어주었다. 눈을 감고 오늘의 산행을 하나 둘씩 떠올려 본다.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국사 편찬위원회을 지나 기술표준원 뒤를 지나면 관악산 육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험한 바위를 올라야만 정상에 도달할 수 있어 찾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등산객의 발길에 치이지 않고 올망졸망한 속세의 경치를 보려면 이곳이 제격이다.


육봉에서는 타워팰리스도 보이고,청계산 밑 서울대공원,경마장, 그리고 종합청사와 안양 의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제격을 보기 위해선 두발보다 네발로 기어야하고, 정신줄을 놓으면 천길 낭떠러지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같은 영하 11도의 바람은 얼굴을 차갑게 때렸고, 세겹의 외투를 입었건만 파고드는 바람은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바람은 설악산 황철봉 만큼 거셌고, 그 덕에 손도 곱았다. 그마저 안전장치 하나없는 고바위에선 추위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바위를 잡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고, 온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몸은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햇볕을 받은 낙엽은 말린 고추처럼 이리저리 비틀어져 있었다. 돋보기라도 들이댄다면 기세좋게 타버릴 것 처럼 손에 쥔 낙엽은 바삭바삭 소리를 냈다. 낙엽은 찬 공기를 휘감은 바람이 사나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사방으로 흩어졌다. 잘 마른 낙엽은 등산화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냈지만, 그늘진 곳의 낙엽은 얼음과 등산객의 발에 뭉개지면서 보기싫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낙엽은 내 발에도 차였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등산화에도 차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생명을 다한 앙상한 나무기둥 밑으로 모여들었고, 새 생명을 위해 아낌없는 양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추운 계절은 눈물이 많은 법이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눈물샘이 추위에 터진 듯, 안경 쓰고 벗기를 꽤나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육봉을 넘었고 팔봉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각자 준비해 간 음식을 배낭에서 꺼냈다. 라면과 매생이 만두 떡국 포도주 소주 커피 사과 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하얀비닐을 천막처럼 펼치고 버너를 켜니,하얀 비닐은 에드벌룬처럼 둥그런 원형 텐트를 만들어냈다. 그곳에서 갖고 온 음식을 8명의 뱃속에 넣으니 모두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등 따습고 배도 부르니 추위에 맞서 내려가기 싫었던 것이다.


산행을 오래하면 잘 닦인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을 걷고 싶어진다. 이렇게 추운날, 추억을 찾으러 산에 간다해도 영 내키지 않는다. 안방 따뜻한 돌 침대가 그립고,뜨거운 물에 차갑게 식어버린 땀에 벤 몸을 깨끗히 씻어 내고 싶어진다. 그리고 족발과 치킨, 기타등등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워 진다. 내 몸은 그렇게 게을러졌고, 편한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왕관바위도 지났고, 50도 경사의 바위 몇개를 넘어 무너미 고개로 내려올수 있었다. 하산길은 안양 서울대 수목원으로 정했고, 담장을 넘고 평탄한 길을 지나 안양유원지로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오리백숙과의 만남. 따뜻했다.


몇년 만의 관악산 산행이었다. 산은 그곳에 있었지만, 내 마음과 몸은 많이 변했다. 가파른 언덕을 치고 넘을 때 몹시도 숨이 찼다. 거기 산이 있기 때문에 산에 간다는 말은 이제 내게는 익숙하지 않다. 내 체력은 바닥을 쳤고 재기가 필요할 뿐이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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