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To. 휘문 ~
중,고등학교 6년을 다닌 학교건만 졸업후 한번도 찾지 않았던 교정이다.
그런 내가 동문 체육대회를 참석하고, 교내 송년회도 다녀왔으니 신기하고 놀랄만한 사건임에 들림없다. 그건 휘마동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교는 학교안 담장을 타고 슬며시 빠져나온 담쟁이덩굴 같은 추억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모교는 학적부에 말라버린 잉크같은, 더 이상 손에 쥐어볼 수 없는 아쉬움으로 생각했고,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졸업앨범에서 잠시 옛날을 허공에 떠올려보는 아련한 감상이면 족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 ‘모교’이름을 화두로 던지고 글을 쓴다는 것은 실로 가슴 두근대는 일일 것이다.
휘마동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마라톤 입문 첫해였고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후덥지근한 어느 날이었다. 서울대공원에서 개최한 혹서기 마라톤에서 선수가 아닌 자봉요원으로 휘마동 선후배님을 뵐 수 있었던 건 내겐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때 선배님을 뵙지 않았다면 오늘의 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회장 숲길 두 번째 급수대에서 물과 이온음료, 수박을 한상 차려놓고 오고가는 선수들을 맞이하고 있을 때 휘문 유니폼을 입은 선배님 두분께서 급수대로 오셨다. 선배님께 물이 담긴 종이컵을 건네면서 ‘‘휘문 77회 입니다“가 터져 나왔을 땐 왠지 모를 뭉클함이 있었다. ‘휘문’을 그렇게 뜨겁게 불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왼쪽 가슴에 ‘휘문’을 새긴 연두색 유니폼을 입은 선후배님을 뵐 때마다 ‘휘문 화이팅’,‘선배님 화이팅’을 연신 외쳤으니 말이다. 급수대로 다가오는 선후배님 모습은 날이 선 군악대의 제복처럼 깔끔하고도 아름다웠다. 그건 땀이 흥건한 모교 선후배님의 귀한 모습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마가 끝나고 해가 짧아진 어느 겨울에 휘마동 정모에 처음으로 참석했었다. 만남의 장소가 어딘지 몰라 여의나루역 출구에서 ‘휴먼레이스’ 젊은 마라톤 클럽 친구들을 휘문 후배라 착각하고 빡세게 인터벌 훈련을 할 뻔 했었다. 그들은 ‘휘문출신’이라 말하기에는 다소 건방졌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그들이 이끄는데로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휘마동’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우연이었고, 첫 훈련시작도 한편의 코메디였다.
마라톤은 내게 적성이 잘 맞았다. 기록욕심도 채워주면서 많은 시간을 요하는 종주산행 보다 짧은 운동으로 그 이상의 효과를 맞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생소한 용어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써브-3,자봉,피칭,런지,빌드업,파틀렉,인터벌등등... 그런 용어들이 머릿속에 각인될 때마다 기록은 조금씩 앞당겨졌다. 3시간 55분의 첫 풀코스 기록은 3시간 32분에서 3시간 25분으로, 3시간 17분 기록은 3시간 11분까지 단축되었다. 그때는 ‘공부가 제일 쉬었어요’가 아니라 마라톤이 제일 쉬었던 날들이었다. 이만하면 마라톤에서 중 상급 수준이라 자만했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써브-3를 꿈꾸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강습을 받았음에도 초보수준을 면치 못한 수영이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어학공부도 나쁜 머리를 탓하고 포기했을 만큼 내게는 찰거머리 같은 끈기가 없었다. 하지만 마라톤은 달랐다. 다리가 가는 대로 ,팔을 빠르게 치켜 올릴 때마다 정직한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럴수록 휘마동 훈련에 열심히 참여했고 매주마다 대회출전도 했을 만큼 휘마동과 마라톤에 빠져 들어갔다. 휘마동은 참으로 따뜻했다. 선배님들은 후배를 배려해주었고, 친형같은 후덕함이 있었다. 후배들은 선배님을 어려워하면서도 후배의 도리를 다했다. 1년에 한번 개최되는 휘마동 캠프는 그야말로 선후배님 간의 화합의 장이 되었다. 선후배님이 동그란 원을 그리고 호기롭게 응원가와 구호를 외치고 나면 난로 속 한 장의 연탄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마라톤 입문을 동네 마라톤 클럽에서 시작했지만, 늘 휘문 유니폼을 입고 달린다. 전통의 학교라 자부심이 강했고, 휘마동 유니폼을 입고 달리면 무엇보다 누가 되지 않겠다는 팽팽한 긴장감과 최선의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곤 한다. 어느 날부터 선배님들의 훈련일지를 훔쳐보면서 훈련일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훈련일지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훈련일지를 쓰다 보니 옛것을 남기고 오늘을 반성하는 좋은 습관도 가지게 되었다. 훈련일지는 훈련한 사람만이 쓸 수 있어,초창기에는 훈련일지를 쓰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제 휘문은 빈화지에 ‘TO~'라고 시작하는 연애편지속의 다정한 이름이 되었고, 휘마동은 ’From~'이라고 맺음말을 쓰게 하는 달콤하고도 단단한 방점으로 변해 있었다. 소중한 선배님들을 알게 되었고, 다정한 후배님들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이 몸에 베어 휘마동 선택을 너무나 잘했다고 생각한다. 휘문 마라톤을 통해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휘마동!!! 나는 너를 사랑한다.
I LOVE WHIMADONG~
From 휘마동 77회 민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