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사막 160km 울트라 마라톤 후기

몽골

by 민경남


[몽골 울트라 마라톤대회 참가 후기]

초록이 미친 듯 피어나는 계절에 이곳에 왔다.
여기도 초록이 있지만 이동 거리가 길어질수록 황토색이 주를 이룬다. 낙타와 말, 염소의 색깔도 황토색이었고 건물의 외벽들도 흙길 바닥처럼 짙은 황토 색깔이 많았다. 초록나무가 길게 뻗어 살 수 없는 이곳. 우리나라에서 3시간 40분을 날아온 세상은 더할 수 없이 뜨거운 태양과 대지가 우리를 반긴다.

버스 창문 밖으로 사막의 무자비한 더위와 초록이 일렁이고 있었다. 우랄 알타이 산맥을 끝 간 데 없이 가로 길렀고, 왼쪽에 펼쳐진 낮고 푸른 산맥을 넘으면 중국으로 향하는 길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 때문에 공기는 텁텁하기만 하다. 그래도 밤하늘에 떠있는 별은 내 몸의 고통이 달궈질수록 값비싼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이곳은 황량한 벌판과 헐벗은 자갈과 모래, 흙먼지가 대지의 전부를 차지한다. 초록이라 해도 풀도, 나무도 아닌 경계가 애매한 성장판이 멈춘 초록의 짧은 나무들만 내 무릎 밑을 파고들 뿐이다.

여기까지 달려오기 위해 준비한 시간들은 6개월을 훌쩍 넘겼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대회 참가를 위해 한겨울에도 풀코스를 달렸다. 32km, 21.0975km, 100km 울트라 마라톤도 마다하지 않고 완주의 기쁨도 누렸다. 그것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쓰러지지 않는 백만 스물하나, 스물둘의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출전하는 휘마동 한구형님, 정묵형님과 단톡방을 만들고 스캐쥴도 짜며 하나 둘 준비했다. 대회를 앞두고 어느 순간 마음가짐이 조금씩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긴장감은 늦출 수 없었다. 8박 9일. 긴 여행이었다. 낮잠 꿈속에서 헤매듯 차순으로 나눠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1일 차 - 6/28(토) 맑음
울란바토르에서 노란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꼬박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3시간 남짓 이동 후 몽골초원에서 치킨버거로 첫 음식을 먹었다. 맛이 제법이다. 우리나라 홈플러스 같은 마트에 들러 주전부리 음식도 사며 낯선 마을의 풍경도 구경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차량 고장으로 1시간 이상을 그 마을에서 대기해야 했다.

저녁은 김밥, 사과, 샐러드가 들어있는 도시락으로 먹었다. 밤 10시. 게르에 도착했다. 게르 8호실에 짐을 풀고 공용 샤워실에서 피곤한 몸을 씻었다. 첫날밤이라 잠이 안 온다. 신혼 첫날밤처럼 설레었던 것 같다. 룸메이트 휘문 형님두분, 송태규 교장샘과 다음날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까지 길게 술을 마셨다.

2일 차 - 6/29(일) 맑음
오늘도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중간에 얼음 골이라는 계곡 얼음이 녹지 않는 곳도 구경했다. 점심 무렵 비가 내렸다. 샐러드 닭고기 찜, 김치, 수프, 김 종류를 담은 도시락을 초원에서 먹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먹었다. 작년에 오신 분들은 바람 폭풍으로 모래흙과 같이 먹었다 하니 사막 날씨는 변화무쌍한 거 같다. 몽골 수프는 우리나라 크림수프보다 맛이 진했지만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오후 6시. 대회장에 도착했다. 사막의 여름은 해가 늦게 떨어지는 것 같다. 저녁 7시가 넘어감에도 내 머리 위에서 보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처럼 이글거린다.

이곳에서 대회 설명회를 개최했고 게르 26호를 배정받았다. 이곳 식당은 괜찮았고 게르에서 10여 km 떨어진 모래언덕도 올랐다. 사막의 어둠 속에서 모래톱 정상 끝에 서니 사물들의 경계는 되레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은 금방이라도 뭔가를 쏟아부을 듯 모래 한가운데가 음울하게 주저앉아 있었고 , 모래 언덕 뒤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굉장한 공포를 동반해야 했다. 마치 지옥이라도 온듯한 두려운 모습이다.

푹푹 발이 빠지면서 모래 언덕을 오르니 몸도 지친다. 하지만 새파란 밤하늘에 달처럼 떠오르는 노을이 모래 산에서 얼음처럼 빛나던 밤은 꽤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저녁 9시에도 이곳은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별들이 속삭이듯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3일 차(대회 1일 차) - 6/30(월) 맑음
이른 새벽은 조금 추웠고 대회장 아치는 질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중동 이슬람 신도 같은 복장으로 스타트라인에 섰다. 8시 30분. 출발시간을 알린다.

10여 km를 한구형님과 km당 7분 초반으로 달렸다. 차를 타고 이곳에 올 때까진 몰랐는데 막상 달려보니 주로 여기저기에 길을 잘못 든 괘도열차 자국 같은 요철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두발을 제대로 낚아챌 수 없는 흙모래와 자갈로 인해 두 다리는 이내 지쳐가기 시작한다. 무덥고 허기진 마른나무들은 바람 소리에도 요동치지 않았다. 지나쳐간 벌판 사이로 밑 동만 남은 거친 풀잎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종아리를 사각사각 쓸고 지나간다.

풀숲 길 없는 길을 달리기도 했고 모래사막 언덕이 나오면 걸었다. 탱크가 지나간 것 같은 주로는 달려도 달려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고무풍선에 더위를 불어넣은 것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더위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막은 그렇게 뛸 수 없는 헛힘만 쏟아붓게 하는 것 같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흙먼지는 바람 속에 섞여 꽃처럼 이리저리 흩날리고 해발 1,200 고지가 넘는 고비 사막의 태양은 많은 주자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첫날 정묵 형님은 혀를 내두르기는 했으나 전체 5등으로 골인하셨다.

첫날 대회가 끝난 뒤의 스케줄은 낙타를 타는 프로그램이다. 낙타는 처음 타본다. 내 낙타 뒤에 묶인 또 다른 낙타가 내 허벅지에 입술을 붙이고 있으니 난감할 뿐이다.

저녁 바람은 요란했고 별은 검은 하늘에서 촛농처럼 떨어질 것만 같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마른 톱밥 같은 모래흙을 창틈에 수북이 남겨 놓은 채 사막의 달그림자를 받고 있었다.

4일 차(대회 2일 차) - 7/1(화) 맑음
8시 정각, 게르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모자를 쓴 머리 형태는 더위에 떡이 진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쌩쌩하니 얼굴에는 혈색이 돋았다.

달릴 때마다 얼굴 전체로 여름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덥지만 습하지 않아 좋다.
이틀 날 코스는 사막 계곡을 오르고 내려가는 곳이다. 말이 계곡이지 서부 영화에 보는 황량한 계곡과 같은 모습이다. 언덕을 달려봤으나 모래가 섞인 흙으로 헛발질을 수십 번 반복해야 했다. 그걸 참고 계속 달리고 있으면 허벅지가 터져나가는 듯하고 그때마다 장딴지는 부르르 떨린다. 25킬로 지점 천막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40킬로 지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게르에 도착하니 인터넷이 잘 터졌다. 며칠 째 인터넷이 안돼 그리운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세상 소식을 모르니 미친놈 마냥 마음이 뒤숭숭했던 며칠이 해결되는 순간이다.

새로 배정받은 게르에서 다시 짐을 펼쳤다. 내일도 대회가 있으니 오늘도 바로 취침모두에 돌입한다.

5일 차(대회 3일 차) - 7/2(수) 맑음
자갈밭에 내려앉은 엷은 어둠을 들추며 부스스 일어났다.
3일째는 게르에서 짐을 싸고 다시 출발이다. 많지는 않았지만 하늘엔 양떼구름이 흘러갔고, 구름 사이로 바람과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래도 부신 햇살이라 두 눈은 절로 찡그려진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팽팽해진 푸른 하늘은 거대한 빗자루로 쓱쓱 쓸어낸 듯 구름 한 조각 보이지 않는다. 더위만 없었다면 사진 찍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한 낮이 가까워질수록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마른침이 나도 모르게 흐른다. 골인지점 부부카 소리에 맞춰 양팔을 들고 힘겹게 골인했다. 오늘 정묵형님은 전체 4등을 차지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 이리도 체력과 정신력이 좋은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제 150km 공식적인 대회가 끝이 났다. 늦은 오후 식당 밖 그늘은 바람이 아주 잘 통한다. 시원한 바람에 시원한 맥주. 맛있다. 그래도 아이스크림과 얼음이 몹시도 그립다.

오늘도 어김없이 별이 뜬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읆어도 좋은 밤이다.
폐, 경, 옥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북극성 여러 가지 별이 반짝반짝 빛난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새겨 넣기 위해 던져 올린 무수한 조명탄 같다.

6일 차 - 7/3(목) 맑음
이제 공식대회도 끝났다. 또다시 차를 타고 비 포장도로를 10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 대회가 끝나니 웃음이 자주 나왔다. 일행들이 답하기 어려운 물음을 던질 때도 웃었고 대화가 끊어졌을 때도 웃었다. 아득하고 안도의 웃음이었다. 며칠 사이 시꺼멓게 타버린 흙냄새 같은 웃음.

나이트 런을 즐기기 위해 다시 한번 스타트 라인에 섰다. 오늘 달리는 것은 10km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벤트로 달리는 것이다. 오늘은 게르가 아닌 대회 측에서 준비해 준 텐트에서 하룻밤을 묵는 날이다. 휘문 두 형님들과 제일 뒤편에 서서 교가와 응원가, 구호제창, 노래가 끊어질 때면 유행가와 군가를 쉼 없이 부르며 즐겁게 골인할 수 있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은 늘어만 갔다. 늘어난 별만큼 칭기즈칸 술도 입안으로 잘도 넘어간다. 술이 술을 마셨고 못하는 노래도 초원에서 목청을 돋아 흥얼거렸다.

7일 차 - 7/4(금) 맑음
대회가 끝나니 새벽에 날이 흐렸고 구름도 몰려온다. 대회 당일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막상 대회가 끝나니 뛰기 적당하게 바람과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그동안 선수들이 온몸으로 달렸지만 이제 버스가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로에 들어왔다. 차가 너무 많이 밀린다. 차라리 걷는 게 빠르게 느낄 만큼 정체가 심하다. 그래도 이곳저곳에 한국 식당 이름과 CU, GS25 편의점 간판을 보니 정겹기만 하다.

오늘 숙박하는 곳도 게르이지만 여기는 설악산 울산바위 뒤편의 야영장이나, 유럽의 산자락 아래 들녘과 성당에서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엽서 같은 모습이다. 모든 시선이 아름답다. 숲이 가득한 곳. 게르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으니 쾌적해서 좋다.

남아 있는 술을 혁대를 풀어놓고 먹을 만큼 여유가 있다. 어느새 취했고 헝가리 부대사 아네트 님과도 금세 친해졌다. 내 이름을 핸섬가이로 부르겠다고 하니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8일 차 - 7/5(토) 맑음
칭기즈칸의 동상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차갑게 반짝거린다.
칭기즈칸 광장에서 주변 사진을 찍고 차가 많이 밀리는 울란바토르에서 백화점과 박물관 그리고 캐시미어 판매점 투어도 하며 낮 시간을 즐겼다.

아들이 좋아하는 말과, 가끔씩 마주치는 한 무리 양들과... 배를 내민 몽골 남성들의 걷는 모습들을 차 안에서 보니 제법 재밌다. 울란바토르 시내관광은 중국 거리만큼 혼잡하고 뒤엉킨 차량들로 가득하다. 역시나 소낙비가 퍼붓었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무더위다.

이제 폐막식에 개최되는 시간이다. 예술 공연이 한창이고 몽골 국영 TV에서 촬영한 울트라 마라톤 영상이 스크린에 가득히 퍼진다. 내 모습이 영상이 나오니 신기하기만 하다. 이어지는 수상식. 이번에 휘문 정묵형님은 남자 부분 전체 3위를 해서 모교를 더욱 빛내주었다. 밤늦게 행사를 마치고 게르에 도착하니 많이 분들이 속속 술병을 갖고 찾아오셨다. 넘치는 술과 이제는 가까워진 형님들. 어떻게 잤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여러 개로 조각난 듯 흩어진다.


9일 차 - 7/6(일) 맑음
전날 숙취로 인해 어떻게 짐을 꾸리고 공항까지 왔는지 가물가물하다.
한국에 도착하고 짐을 찾았을 땐 어느새 오후 6시가 가까워진다.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바가지 땀을 흘려야 했다. 습도가 높아 온몸이 끈적거린다. 그래도 내 가슴에는 약솜을 바른 것 같은 치유의 여정이었다.

가끔씩 서점에서 몽골 책을 만나게 되면 뜨겁게 안아주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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